심원복 (소백산백년숲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동백은 대표적인 겨울 꽃나무다. 차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수로 제주도, 남부 해안지방에서 자생한다. 한겨울, 눈을 이고 피는 동백의 붉은 꽃이 매혹적이지만 나는 그 이름에 관심이 더 많다.

예전에는 여러 식물이 동백이란 이름으로 불렸었다. 1937년 정태현 등 조선인 학자들이 집필한 ”조선식물향명집“이 발간되었다. 조선 식물을 분류체계에 따라 학명, 우리말 이름, 일본어 이름을 병기한 목록집이다. 식민지 시절이라 국명이란 말을 쓸 수 없었다. 일본말 이름이 국명(國名)이었고, 조선말은 향명(鄕名)이었다. 이 명록이 발간되면서 식물의 우리말 이름이 비로써 정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복되었던 것들의 새로운 표준 명칭을 정했다. 이전까지 동백으로 부르던 생강나무(Lindera obtusiloba)와 때죽나무(Styrax japonicus)를 새 이름으로 바꾼 것도 이때다. 생각나무의 변종인 백동백(감태나무), 때죽나무속의 쪽동백은 원래 이름을 유지했다. 이들 근연종의 이름으로 생강나무나 때죽나무가 본래 동백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동백이란 이름의 동명 이종의 식물이 여럿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나는 조상들이 왜 이렇게 동백에 관심이 많았을까 궁금해졌다. 동백에는 무엇인가 지우지 못할 상고의 비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관련 있어 보이는 것들을 찾아 모으고 있다.

민간에서는 ‘동박’이 널리 쓰였다. 추울 때 꽃이 피는 동백꽃에는 매개할 곤충이 없다. 대신 새가 꿀을 얻고 가루받이를 하는데, 그 이름이 ‘동박새’다. 동백나무(Camellia japonica)의 동백(冬柏)은 한자를 쓰지만, 글자의 뜻과는 관련이 없다. 동백을 중국에서는 산다화(山茶花)라 부른다.

수·당시대의 문헌에는 해석류(海石榴), 해홍화(海紅花)라 하였는데 여기서 海는 신라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춘(椿)이라 쓰고 ‘츠바키(つばき)’라고 읽는다. ‘동박’은 ‘도바기’가 어원이라고 추정된다. ‘도바기’가 동백이 되고 일본어 ‘츠바키’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백이 무엇이냐고! 궁금증이 눈처럼 쌓이는데, 속 시원히 대답해 줄 사람도 문헌도 없다. 대강, 동백은 머릿기름이고, 동백이 나는 식물들을 동백이라 불렀고, 우리말과 일본어가 동백의 어원을 공유한다는 것이 정리되었다. 그리고 일본어에서 춘(椿)이라 쓰고 훈독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일본어 츠바키(つばき)가 우리말 동백과 어원을 공유한다면, 고대로부터 동백의 의미를 椿, 한 글자에 담고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에 닿았다. 椿을 단서로 동백의 뿌리를 찾아 나섰다.

춘(椿)을 옥편에서 보면 참죽나무 춘(椿), 신령스런 나무 이름, 그리고 부친(父親)으로 풀이한다.

여기서 말하는 참죽나무는 멀구술나무과에 딸린 낙엽 교목으로 따뜻한 곳에서 잘 자란다. 봄에 순을 나물로 먹는데 중국인들은 향춘이라 하여 매우 즐긴다. 두 번째, 상서로운 나무의 이름이라는 것은 신탁을 내리는 신령스러운 나무 즉 신목(神木)이라는 뜻이다. 춘부장(椿府丈)에도 같은 椿자가 쓰인다. 장자(莊子)는 오래 사는 것들을 이야기하며 ”대춘(大椿)이라는 나무가 있었는데 8천 년을 봄을 삼고 8천 년을 가을을 삼으며 오래 산다“ 하였다. 장자의 시대에도 상서로운 신목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자의 이야기처럼 椿은 장수의 의미로 쓰기도 한다.

춘부장(椿府丈)은 내가 생각하던 것이 그르지 않다고 믿게 해 준다. 부(府)는 관청이다. 상고시대 관청의 우두머리는 신관을 겸했다. 과연 누가 가장 상서로운 우두머리일까? 제사장이다. 하늘에 제사 드리는 고을의 우두머리가 춘부장(春府丈)이었을 것이다. 후대에 비유적으로 ‘친구의 아버지’로 의미확장을 한 것일 뿐, 본래 의미는 제사장으로 보는 것이 옳다. 그 제사장의 의미를 일본어 つばき(椿,츠바키)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동백은 제사장의 머릿기름이다. 동백으로 머리를 단장하고 제단에 오르는 춘부장(椿府丈)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조상들이 지방마다 기름이 나는 식물을 찾아 동백을 삼았던 것은 제사 때문이었을 것이다. 향기로운 동백기름으로 머리를 곱게 단장하고 제단에 올라 하늘을 우러르던 춘부장과 부족들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하늘을 받드는 제사장의 머릿기름이라면 온 겨레가 저마다 사는 곳에서 찾아 나설 이유가 되지 않았겠는가.

새해에는 그동안 품고만 있었던 동백을 글로 옮길 결심을 했다. 잡히는 대로 더듬어 가다 보면 어디까지 가게 될지 나도 궁금하다. 유라시아 초원 어디쯤 봇나무 숲속일 수도 있다. 동백 한 가지를 꺽어 들고 태백(太伯)에 오른다면 보람이 참으로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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