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

지는 해

-정유경

친구랑 싸워 진 날 저녁
지는 해를 보았네.

나는 분한데
붉게
지는 해는 아름다웠네.

지는 해는 왜
아름답냐?

지는 해 앞에 멈춰 서서
나는 생각했네.

지는 것에 대해서.
 

-즐거운 일기

‘지다’라는 동사는 ‘빚이나 짐을 갖다, 무엇이 넘어가거나 떨어지는 것, 시합이나 싸움에서 상대에게 꺾이는 것, 어떤 현상이나 상태가 생겨나거나 일어나는 것’ 등 네 가지 뜻을 가진 동음이의어입니다. 이 동시는 ‘지다’의 뜻과 가치를 묻고 답하면서, 노을 속 비껴 앉은 어린 왕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철학적인 의미가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친구에게 져서 분한 마음으로 바라봤는데도, 지는 해가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것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싸움의 순간마다 버텨낸 의지 때문 아닐까요. 산다는 것은 이김과 짐이 반복되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기겠다고 마음먹지 않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로맨틱한 삶이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가끔은 먼저 지길 소원하는, 멋진 내가 되기도 합니다.

또 한 해 살아내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과 다가올 걱정은 미뤄두고, 설렘에 기대는 마음으로 계묘년을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날마다 즐거운 일기를 쓰는 것처럼, 저도 글 쓰는 일에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