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개념 안보·재난관리의 선구자 “국가정보기관의 역할이 달라진다”

경북중대재해안전협의체 출범식
경북중대재해안전협의체 출범식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페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모사드가 진단키트 수입, CIA가 코로나 동향 수집하는 시대,
신개념 안보·재난관리 연구 및 정책 제안의 중심 역할 자처

국정원 국장 출신 ‘안보 전략통’의 ‘특별한’ 고향 사랑
출향인 2세 3세가 부모 고향 찾도록 서로 머리 맞대야

 

통상적으로 안보라 하면 적대국을 떠올린다. 우리나라 안보 관련 법령도 북한을 상정한 법령이 많다.

안보는 국민의 안전한 생활을 확보한다는 개념이다.

안보는 적대적 국가 또는 단체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새로운 안보 요소가 많이 생긴다.

일상에서 참사가 생기기도 한다. 이전에 없던 재난도 발생한다.

새로운 지능 스파이도 활동한다. 경험하지 못했던 사회, 경제, 기술 등 여러 분야의 변화에 따라 안보도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 신개념 안보·재난관리의 필요성 확산, 연구와 정책 제안 중심에 석재왕 교수가 있다.

석 교수는 국정원 국장 출신이다. 미국, 이스라엘, 영국 등 선진국을 비롯 여러 나라의 안보 관련 조직을 연구하고 활동을 연구해온 안보 전략통이다. 석 교수는 국가정보포럼, 한국국가정보학회 등 관련 단체의 활성화에도 적극적이다. 석 교수는 “안보·재난관리를 현재에 맞는 미래에도 활용될 개념으로 학문적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안전전문가토론회(국회의원회관)
국민안전전문가토론회(국회의원회관)

석 교수님이 주도하시는 국가정보포럼에 대해 소개를 부탁합니다.

제 박사 논문은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대한 연구입니다. 이스라엘 모사드는 창설 이래 정치개입 없이 오직 국가안보에 충실해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한국정보기관이 불법과 일탈 행위로 기관장과 직원들이 처벌받고 정보역량 약화로 이어지는 사례가 빈번한 모습과 비교됩니다.

정보기관을 제대로 통제해 일탈을 방지하고 선진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국회 등록 단체인 국가정보포럼을 2019년 1월에 설립했습니다. 회원으로는 여야 정치인, 언론인, 학자 등 50여 명으로 구성돼 있고 매년 2~3회 국가정보 연구, 토론, 학술회의 및 워크숍, 출판, 안보현장과 시설견학 등을 주선하고 국내·외 관련 단체들과 교류협력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린시절 가족 사진
어린시절 가족 사진

이 분야를 전공하시게 된 계가가 있나요? 학부 때 전공이 이 분야인가요?

국가정보 관련 학부는 현재까지 한국에는 개설돼 있지 않습니다. 저는 학부 때 정치학을 공부했습니다. 국정원 근무 경험과 국내외 교육기관에서 선진국 정보기관의 조직과 기능을 연구했습니다. 미국이나 선진국에서는 정보기관 연구가 많지만 1990년대 말만 해도 우리는 제대로 된 정보 관련 교육기관이 없었습니다.

제가 2005년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성균관대, 건국대에 국가정보 관련 석박사과정을 개설했지요. 국가정보학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IT, 과학, 철학, 심리학, 법률 등 다양한 분야의 협업이 필요한 학문분과입니다.

국정원이라 하면 일반 국민이 북한 관련 업무만 하는 줄 아는데 여러 업무가 있나 보군요.

북한 관련 업무는 여러 업무 중 하나입니다. 국정원은 국내외 정보와 수사가 통합된 기관이지요. 크게 보면 수집, 분석, 공작, 방첩 등 4가지 업무를 수행합니다. 저는 그 중 북한, 교육 관련 정책 업무를 담당했는데 국가정보학의 이론과 경험을 쌓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언제부터 이 분야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시게 되었는지요?

저희 학과에서 저는 주로 안보나 국가정보뿐 아니라 재난 및 안전관리도 병행해 교육과 연구를 합니다. 2014년 경 당시 건국대 총장님과 대학원장님을 우연히 뵈었는데, 그때 제가 안보와 재난이 융합되고 있고 교육수요가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학과를 새로 만들어 책임을 지는 게 어떠냐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2015년 9월 현재 안보·재난관리학과가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현재 학부에는 없는 대학원 중심 학과입니다.

대학원생들은 배경이 다양하겠습니다.

네, 안보와 안전이 범위가 넓은 만큼 장차관, 국회의원. 공무원, 재난안전관리 현장책임자, 건설관계자 등 교육생이 실로 다양합니다. 이전에는 없던 재난 사고도 일어나고 더 폭넓고 깊은 관점의 안보로 이행되는 상황인지라 각 분야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분들이 많이 지원합니다.

평균 연령도 높고 보는 관점도 다양합니다. 초빙 교수님과 학생들 중에 영주 출신이 5명이나 됩니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사투리를 쓰면서 고향 이야기를 합니다.(함께 웃음)

다양한 분야 출신의 대학원생들이 공부하면 교수-학습 면에서 어렵지 않나요?

분야가 다양하니 어려운 점이 있어도, 다양한 배경에서 오는 경험과 지식을 공유할 수 있고 현장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어 매우 유익합니다. 안보·재난 분야는 학제 간 연구가 필요합니다. 어느 한 학문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배경의 대학원생 입학이 안보·재난관리 학과의 학문 발전에 큰 도움도 됩니다. 이제 안보·재난은 일반이 생각하는 나라 차원의 ‘대북 안보’를 넘어 국가, 기업, 단체, 개인에 이르기까지 연결됩니다. 기존의 대처 방법으로 해결하기 힘든 안보-재난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고 피해를 방지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조속히 진행해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학문으로 보입니다.

네, 선진국은 정보기관의 역할도 바뀌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 때, 모사드가 진단키트를 수입하고 CIA가 코로나 동향을 수집했습니다. 이젠 재난도 안보 분야가 됐다는 단적 예입니다. 정보기관 혼자 재난 상황을 다루기도 불가능합니다. 재난 발생의 불확실성도 높고 다양한 위험들이 있는 바 여러 관련 부처가 유기적으로 협조해야 합니다.

이런 점을 설명하고 정책화하기 위해 저는 언론 기고도 하고 세미나 등을 개최해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지자체를 예로 들면, 이철우 지사께 중대재해안전협의체 신설을 건의해 2021년 12월 발족됐고, 올해 1월에는 오세훈 시장께 역시 건의해 서울시안전위원회를 만들어 시민들이 보다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건국대 안보·재난관리학과도 일반대학원의 ‘학과 간 협동과정’의 학과이군요.

네, 다양한 학문분과들과 협업과 소통을 통해 연구와 교육을 진행해나가는 학과입니다. 다양한 전공 교수들과 대학원생들이 소통하며 학습을 합니다. 안보·재난관리학과는 융합학과입니다. 현대사회는 안보와 안전, 재난관리가 분리된 듯하면서도 합쳐져 있습니다.

코로나만 하더라도 보건복지부만의 일이 아닙니다. 정보기관, 외교부, 국방부 등 연관부처가 모두 연결돼 있습니다. 안보와 재난이 상호침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추세에 부응하기 위해 만든 학과입니다. 앞으로 더욱 그 중요성이 커지는 학과입니다.

영주에서는 초중고를 다 다니셨는지요?

영주남부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영중학교에 다니다 2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사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전부터 서울에서 건설업에 종사하시면서 홀로 계셨는데 가족이 그때 합치게 됐습니다. 서울에 온 지 벌써 45년 정도인데 나이 들수록 고향 생각이 더 납니다.

어릴 때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한가 봅니다.

그럼요. 큰집은 하망동이었고 외가는 평은이었습니다. 외가에 자주 가서 놀았습니다. 버스 타고도 한참을 걸어가야 했던 외가입니다. 영주남부초등학교는 시골 정취 가득한 학교였지요. 한 학급에 70명에 오전·오후반으로 등교했습니다. 미군 원조 옥수수 빵을 맛있게 먹던 기억도 나고 삼판서 고택 옛 자리 근처에서 동생과 ‘아이스케키’를 먹던 기억도 납니다.

당시 서천에는 물이 많았습니다. 여름엔 발가벗고 멱을 감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학교를 늦게 파한 여학생들이 물 건너느라 치마를 둥둥 걷으면 우리는 들킬세라 풀숲에 숨었다 옷과 신발 찾느라 한바탕 법석을 떨었지요(함께 웃음). 국가적으로도 큰일을 한 친구들이 여럿입니다.

지금도 고향 지키는 친구들은 50명 정도 됩니다. 영주남부초등학교 재경모임이 제일 잘 되고 있습니다. 토끼띠를 중심으로 고향의 여러 학교를 같은 해에 나온 친구들 모임도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향우회 활동도 열심히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열심히 한다는 말을 들으니 부끄럽습니다. 90년대 초 재경영주시향우회 운영이사를 맡았습니다. 중학교 재학 중 서울로 전학했지만 고향은 제 뿌리였습니다. 당시 금진호 의원과 홍사덕 의원이 향우회에 나오셨습니다. 홍사덕 의원은 사과 한 박스를 향우회 행사 시 보내주시곤 했습니다. 금진호 의원의 ‘자네 왔는가?’란 말씀도 생생합니다.

지난해 타계하신 강신옥 변호사께서 가끔 오셔서 의정활동을 하시면서 경험하신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서슬 퍼런 시대에 김재규를 변호한 강골 변호사이셨지요. 명분 없이 현실과 타협하거나 남의 눈치를 보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정신적 멘토와 같은 분입니다.

영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분들의 자녀들 이야기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고향에 대한 애정이 약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영주시와 출향인들이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머리를 맞대면 출향인의 2세 3세들이 자신도 영주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다양한 방법이 나올 겁니다. 영주는 세상에 큰일을 한 선비가 많은 곳입니다. 현대에도 큰일을 한 분들이 여럿입니다.

영주는 택리지, 정감록 등 여러 지리지에서도 살기 좋은 곳입니다. 이북5도민회는 북녘땅을 고향으로 둔 분들의 2세 3세 자녀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들이 고향을 생각하게 하는 방안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영주 당국자나 시민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출향인들과 자주 소통하면 좋겠습니다. 평소의 소통이 중요합니다. 지역이 살아야 나라도 건강합니다. 그리고 지역 인재를 키우고 선배들이 이끌어주는 전통이 중요합니다. 과거 김계원 비서실장 계실 때 영주출신들이 중앙부처 등에 발탁이 많이 됐고 당연히 영주도 많이 발전했습니다. 균형있는 나라 발전을 위해서도 재향인과 출향인의 소통과 협업을 통해 고향 문제 해결에 머리 맞대면 좋은 해결책이 나오리라 봅니다.

황재천 프리랜서 기자/ 오공환 기자

석재왕 교수 프로필

- 영주남부초등학교, 영주대영중학교 재학 중 가족 이사로 서울 전학
-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 연세대학교 행정학석사, 성균관대학교 정치학박사
- (현)건국대 교수
- (현)건국대 안보재난안전융합연구소 소장
- (현)한국국가정보학회 대외협력위원장(부회장)
- (현)사단법인 국가정보포럼 설립 대표 취임(2019-)
- (현) 범정부 TF 재난관리분과 위원회 위원(2022-)
- (현) 사단법인 대한노인회중앙회 안전정책연구원장(2020-)
- (저서)스파이스쿨(공저, 2018), 현대 한미관계의 이해(공저, 2019)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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