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경 (수필가)

마지막 달력 한 장을 남기고 있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올 초, 새해가 시작되면서 기대로 엮어질 날을 꿈꾸며 각오와 다짐을 단단히 여몄다. 작심한 일 앞에는 언제나 설렘이 동반한다. 연초만 되면 새출발, 새마음으로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몸의 감각을 자극하기에 바쁘다. 꿈, 기대, 희망, 계획은 ‘새’자를 몰고 다닌다.

그래서 ‘새’자는 늘 가슴을 뛰게 한다. 그래서일까. 미뤄오던 일도 새해 앞에만 서면 용기가 작동해 반드시 이뤄내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의가 생기곤 한다. 읽다가 덮은 책, 미뤄오던 수강, 결심했지만 실천 못 한 운동, 초고만 쓰고 방치한 원고 등 새해만 되면 멈춰버린 시간을 돌리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쓰지만, 늘 거기까지다.

실행 없는 계획만이 메아리로 돌아올 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어제와 내일을 잇는 오늘이라는 시간 앞에서 모래성만 쌓고 부수기를 반복하다 어느덧 연말을 코앞에 두고야 말았다. 괜히 마음만 부산하다.

톨스토이는 “한 해의 가장 큰 행복은 한 해의 마지막에서 그해의 처음보다 훨씬 나아진 자신을 느낄 때”라고 했다. 성장하는 한 해, 아니 정확히 말해 성장하고 싶은 한 해가 되길 희망하는 건 누구나가 바라는 새해 소망일 것이다. 하지만 연말이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 그 설렘은 구겨진 종잇장처럼 구석진 자리에서 사용 불가의 이름표만 단 채 자신을 바라볼 뿐이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연말, 그 한 해를 갈무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다가올 새해에 대한 희망찬 설계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에 대한 기대, 그 희망 때문에 우리는 지금의 힘든 시간을 견뎌내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다.

사람은 시간 앞에서 평등하다.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주어진다.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일 중 가장 잘한 것이 있다면 모두에게 시간을 공평하게 허락했다는 사실이다. 시간은 권력과 부, 명예 앞에서조차 엄격하고 공정하니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주어진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본인의 몫이다. 개인의 의지에 따라 하루가 두 배인 48시간이 될 수가 있고, 절반인 12시간이 될 수도 있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24시간을 적절히 배분해 효율성 있게, 사용할 가치를 찾아 그것을 잘 작동해 나가는 것이다.

10대가 느끼는 시간과 80대가 느끼는 시간은 그 의미부터가 다르다. 시간이라는 물리적인 본질은 같지만 앞을 향해 한창 달려가야 할 10대의 삶과 모든 것이 경륜으로 점철된 80대의 갈무리된 삶은 극명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우리 인간은 우주의 한 점을 향해 분주히 시간을 소모해 나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내딛는 걸음 위로 모자이크된 삶을 그려보며 마지막 지점에는 어떤 무늬로 남겨질지를 생각하다 보면 언행에 대한 책임이 따르기도 한다.

12월에 접어들었으니 곧 여러 모임에서 송년회가 이어질 테다. 송년회의 의미는 연말에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나누기 위해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서로를 위로하며 새해 소망을 비는 것이다. 이 무렵이면 새해에 계획한 각오나 다짐이 제대로 이행되었는지, 부족하고 아쉬움이 후회로 남는 건 없는지 점검해서 ‘새’자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봐야 한다.

올해는 유난히도 사건 사고가 잦으면서 경제적으로도 힘든 한 해였다. 그 어느 해보다 더불어 함께의 가치가 중요하기에 주위를 살펴 온기를 나누는 따뜻한 송년을 맞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 년 열두 달 중 마지막 한 달만이라도 주변을 살펴 소외되고 관심받지 못한 이들에게 애정을 가질 수 있다면 더없이 보람된 연말을 보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톨스토이의 말처럼 한 해의 마지막이 새해의 시작보다 조금이라도 성장하였다면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일 터, 누구에게나 그 시간 앞에서만큼은 온전한 자유가 깃들었으면 한다. 고맙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연말, 작고 사소한 것에도 눈길 한 번 더 줄 수 있는 가슴 따뜻한 연말, 그래서 2022년 한 장 남은 달력이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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