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

귀에게

-장수철

그러므로 귀는 내가 한참 간지러운 것이다

미안하다
땅속 괴근처럼 비대해진
의식과잉의 귓밥을 달고 다니는 귀에게
시종 부기가 빠지지 않는 슬픔을 매단 귀에게
한 실패한 혁명가가 젊은 시절 몰고 다니던
고물 오토바이의 사이드카처럼
작고 귀엽고
그러나 늘 텅 빈 귀에게
내 구부정한 오독의 목소리를 제법 알아듣는 늙은 귀에게
구불구불 협곡 속에 내 부끄러운 가족력을 숨겨준 귀에게
혹한 위를 떠도는 새떼들의 차가운 울음소리를 삼키는 귀에게
구순구개열처럼 찢어진 별들의 신음을
알아듣는 귀에게
소리 내어 울지 않는 귀에게
다만 듣는 귀에게

 

-독백을 물어뜯는 쓸쓸한 신음

이 시는 “그러므로 귀는 내가 한참 간지러운 것이다”를 먼저 써 놓고 시작합니다. 나에게 하는 속말을 시적 대상으로 삼았음을 알리고자 하는 의도입니다. 귀는 남의 말이나 자신에게 하는 속말을 듣기만 하는 신체 일부입니다. 몸 입장에서는 귀가 간지러워야 하는데 귀 입장에서는 귀를 제외한 모든 것(특히 입)이 간지러운 게 맞겠죠.

귀를 연다는 것은 마음을 여는 건데, 편안하게 연 귀로 낮은 소리에 귀 기울여 본 적이 언제인가 싶습니다. 아무 말이나 막 쏟아내는 가벼운 입술은 알아주려나 모르겠어요. 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차 하는 순간 한마디만 잘못 듣거나, 듣고 싶은 것만 듣거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결론부터 내리는 성급함으로, 말하는 자의 의도는 어긋나 버리고 끝내는 오해만 키우게 된다는 것을요.

바야흐로 난청의 시대입니다. 난청을 불편해하고 괴로워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선택적, 과장적 난청을 두르고 삽니다. 소통 자체가 싫어, 그것을 거부하겠다는 몸짓이겠지요. 오로지 밖의 소리를 받아들이기만 하던 귀도 안(내면)의 소리에 더 집중합니다.

나를 털어놓고도 그에게 닿지 않았다는, 혹은 그를 털어놓았는데 나에게 닿지 않았다는 헛헛한 생각이 드는 것은 입과 귀 사이의 헛디딘 교감 때문일까요? 모든 소리가 와 닿을 때는 이명처럼 질긴 울음이 따라붙습니다. 그런데도 귀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아요. “다만 듣”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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