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
내가 구멍이라고
-홍재현
자려고
불 끄고 누웠는데
갑자기 분하다
축구만 하면
친구들의 원망을 듣는다
내가 구멍이란다
나 때문에 맨날 진단다
씨이……
자려고
울면서 누웠는데
갑자기 방문이 열린다
술만 마시면
아빠는 나를 꼭 껴안으신다
내가 숨구멍이란다
나 때문에 살맛 난단다
씨익……
-어떤 길라잡이
오늘도 생각 많아진 아이의 마음에 두 개의 구멍이 생겼네요. 바늘 몇 개가 날아와 가슴 콕콕 찌르는 듯한 마음과, 달짝지근한 마시멜로를 먹은 것 같은 마음이요. 친구들이랑 축구를 했고, “나 때문에 진다”는 소리를 또 들었어요. 속상해 “울면서 누웠는데” 그런 나를 아빠는 가만두지 않겠죠? 아빠가 안는 순간, 분했던 하루가 일제히 풀리면서 나는 “살맛 나는 숨구멍”이 됩니다. 축구 좀 못하면 어때요. 아빠에게만큼은 최고의 아들인데요.
지극히 평범한 사람도 다른 사람의 잣대로 마음속 틈이 생기고 분열이 생깁니다. 그러나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같은 말도 한 바퀴 돌다 보면, “씨이”가 “씨익”이 되고 “씨익”이 “씨이”로 되기도 합니다. 위치의 차이고 상황의 차이니까요.
이 동시 속 한 아이의 팔딱이는 생각에는 아무런 겉치레나 화려함이 없습니다. 어른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괜찮은 척, 너그러운 척 허세를 부리지도 않아요. 그래서 더 공감하게 됩니다. 이처럼 글맛 좋은 작품은 마음을 안온하게 합니다.
이왕 축구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마법 같은 승부로 16강 진출을 이루었는데 그 이상의 기적을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