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율(동양대학교 교수)

일반적으로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평가할 때 쓰는 ‘이름값도 못한다.’ 혹은 ‘이름에 먹칠을 했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름이 본래 가지는 의미와 가치에 그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이 턱없이 못 미쳐 그 이름의 의미와 가치를 퇴색(褪色)시켰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사건들을 보면서 사람의 이름이 가지는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성을 느낀다. 이름과 관련된 고사성어로 ‘고명사의(顧名思義)’란 말이 있다. 이름을 돌아보며 뜻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낳아 그 자식에게 이름을 지어 줄 때에는 글자 한자 한자에 가장 좋은 뜻을 담아서 짓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그 이름의 주인공이 이름의 의미대로 살아가라는 조부모나 부모의 간절한 염원을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소설 삼국지인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가 아니라 정사(正史)인 진수(陳壽)의 『삼국지』에서 유래한다. 『삼국지위지(三國志魏志)』 권27 「왕창전(王昶傳)」에는 왕창이 자신의 아들과 조카의 이름을 지어주며 이렇게 당부한다. “너희들이 입신하고 처신함에 유가의 가르침을 따르고 도가의 말을 실천하게 하고자 하였으므로 현(玄)・묵(黙)・충(沖)・허(虛)로 이름을 지었으니 너희들로 하여금 이름을 보고서 그 뜻을 생각하여 감히 어기지 못하게 하고자 함이다.[欲使汝曹.立身行己.遵儒家之敎.履道家之言.故.以玄默沖虛爲名.欲使汝曹.顧名思義.不敢違越也.]”

대체로 이름이나 자(字)는 부모나 조부모가 지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호(號)의 경우에는 짓는 주체가 비교적 다양하여 다른 사람이 지어주는 경우도 있고 또 때로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 호를 짓는 자호(自號)도 있다. 어쨌거나 우리가 이름을 지어줄 때에는 바로 그 대상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일종의 바람을 담아 이름을 짓는다. 그래서 그 이름에 부합하는 삶을 살도록 격려가 필요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상당수의 경우 작명(作名)의 진정한 의도를 말해주지 않아 자기 이름의 뜻을 제대로 모르고 사는 사람이 이외로 많다는 데에 놀라고는 한다.

사실 이름은 신성한 것이고 한 개체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김춘수(金春洙) 시인이 쓴 ‘꽃’이라는 시를 굳이 거론(擧論)하지 않더라도 사람이 이름을 가지게 될 때 비로소 인간 사회의 일원으로 그 존재가치를 부여받고 또 인정받는다. 요즈음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태어나는데 출생했을 때 이름이 없으면 그 아이는 산모(産母)의 이름에다 ‘누구누구 아기’, 혹은 ‘누구누구 아이’라는 명칭으로 분류된다.

물론 출생 전에 이름을 지었다면 예외이겠지만. 어쨌든 이름이 붙여지는 순간 그는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름을 소중히 여기고 그 이름의 의미대로 살려고 하며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노력하는 당위성(當爲性)이 이런 것에 연유한다고 하겠다. ‘호사유피.인사유명(虎死留皮.人死留名: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이라는 말도 이런 맥락을 지향한다.

그런데 작금(昨今)의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정치인을 포함한 사회지도층 상당수의 인사들이 자기 이름값은커녕 그 소중한 이름에 먹칠을 하여 조부모나 부모까지 욕되게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다시말해 ‘불초자손욕급선조(不肖子孫辱及先祖: 조상을 닮지 않은 못난 자손들은 욕이 선조에게 미치게 한다.)’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할 것도 없다. 나 자신부터 내 조부모와 부모가 지어주신 소중한 이름의 의미와 가치에 부합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이름을 욕되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봐야겠다. 그리고 조금 주제넘게 말하면 앞서 언급한 ‘고명사의(顧名思義)’의 고사를 생각하며, 자기 이름의 의미와 가치를 곱씹으며 살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이름값도 못한다.’거나 ‘이름에 먹칠을 했다.’라는 말이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면 글쓴이만의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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