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 국가조차 빈곤의 퇴치가 쉽지 않다는 뜻일 게다. 그럼에도 자국민의 빈곤에 대해서는 마땅히 국가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그게 국가의 존립 이유다. 그게 국가의 의무이며 책임이다. 1인당 소득 3만 불의 시대라지만 우리의 복지는 여전히 빈틈이 많다. 제도적 사각지대도 상당하다. 북유럽을 따라 잡기는 커녕 이제 막 앞가림하는 수준이다. 그것은 영주시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아쉽게도 이것이 영주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소설(小雪)이 지나고 본격적인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바야흐로 거리에 구세군 냄비가 걸리는 계절이 됐다. 시인 릴케는 그의 어떤 시편에서 집이 없는 자들조차 더 이상 집을 짓지 않는다고 슬퍼했다. 혹한기가 되면 이런 궁금증을 가지는 시민들도 가끔 있다. 길고양이는 대체 어디에서 추위를 피할까. 혹은 고독사에 관한 소식이 마치 집 없는 사람처럼 여기저기 떠돌아다닌다. 문제는 그들 대부분이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며 동시대인이라는 사실이다. 하여 한 해의 저물 무렵엔 이래저래 심란하고 생각거리가 생긴다.
그런데 현실은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3고(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서민들의 살림은 더 빠듯해졌고 여력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어려운 이웃을 뒷짐을 지고 바라보는 것은 개운치가 않다. 특히 시민 사회의 연대를 배운 의식이 있는 시민이라면 더욱 마음이 편치않을 것이다. 물론 생각은 쉽지만 행동은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누구나 라과디아처럼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라과디아 Fiorello Henry La Guardia(1882-1947)는 1934년부터 12년 동안 내리 뉴욕시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판사 시절에 공정하면서도 빈민들에게 우호적인 판결을 많이 내린 것으로 유명하다. 시장 재임 시에는 마피아 소탕에 나섰고, 공화당 소속임에도 루즈벨트의 진보적인 정책을 지지했다. 청렴결백해 시민들로부터 뉴욕의 영웅으로까지 추앙을 받았으며, 뉴욕에는 그의 이름을 딴 공항이 있을 정도이다. 다음은 라과디아와 관련하여 널리 알려진 일화이다.
1930년대 초 대공황 시기에 그가 뉴욕 치안판사로 있을 때였다. 굶주림 때문에 빵을 훔친 노인이 있었다. 그는 법에는 예외가 없으니 아무리 사정이 딱해도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며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배고픈 사람이 거리를 헤매는 동안 나는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시민 모두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자신에게 벌금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하며, 방청객 모두에게는 각각 50센트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판사는 이렇게 걷은 57달러 50센트를 노인에게 건넸다. 노인은 10달러의 벌금을 낸 후 47달러 50센트를 갖고 총총히 법정을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