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시인)
기념 타월
-정희경
얼굴을 닦아주고 젖은 머리 감싸주던
글씨가 흐릿하다, 김끝순 님 칠순 기념
올올이 새겨 넣었을 지난날이 풀려있다
언니에게 치이고 동생에게 양보했을
김끝순 아지매의 보풀 같은 일상들
뽀얗게 삶아내었다. 햇살이 촘촘한 날
-수건이라 쓰고, 자존이라 읽다
“김끝순 님 칠순 기념”품으로 받아쓰던, 매끈하고 부드러웠던 수건의 올이 제멋대로 풀렸습니다. 한때는 창창했을 “김끝순 아지매의(고작 칠순인데 할머니 대접하면 안 되겠지요?)/ 보풀 같은 일상들”이 구불텅해졌습니다.
평생을 배경처럼 고분고분 견디기만 하다 보니 “지난날이 풀려” 버렸을까요? 제 이름을 지우며 제 삶을 지우며, 요란스럽지 않게 살아낸 그녀의 속사정은 어떠할까요? “뽀얗게 삶아내”면 경력단절이 될까요? 새로운 시작이 될까요?
이 시조는, 언뜻 태평하게 보입니다. 동시에 팽팽한 긴장감도 느껴집니다. 그러면서도 온전한 겸허 속에 있습니다. 따스한 인간미가 있습니다. 삶의 숱한 경험을 넘은 배려와 희생을 문 당당한 자존이 있습니다.
관심이 없으면 함께 해도 보이지 않습니다. 수건이라는 흔한 물품을 가져와, 한 사람의 생과 비유하는 공감력이 대단합니다. 이렇듯 작은 것 하나에도 관심과 애정을 품는 것이, 위로의 첫걸음이 됩니다.
영주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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