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산업시스템정보공학과 장동식 교수
“자주는 아니지만, 고향 영주에 가면 많은 추억에 잠깁니다. 특히 어린 시절 친구들과 멱을 감고, 하루 종일 뛰어 놀았던 평은의 내성천(乃城川)변에 서면, 내가 벌써 나이 쉰 살이 되어 흘러흘러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보게 하는 곳이 고향의 강가입니다. 정말 저에게 고향이라는 이미지는 늘 ‘내성천(乃城川)’이라는 이름과 함께 떠오릅니다”
한국 최고의 명문 사학인 고려대학교 관리처장의 보직과 산업시스템정보공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는 평은면에서 태어난 장동식(50)선생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언어이다. 그는 평은에서 갈포공장과 평은우체국을 경영하던 사업가인 부친을 둔 덕분에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냈고, 영주중학교를 거쳐 서울로 유학을 하여 배명고등학교와 고려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부시 대통령의 고향인 미국의 텍사스A&M대학에서 산업공학 박사를 받고 귀국하여 모교인 고려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영주사람이다.
평은면 출신의 고려대학교 관리처장으로 일하고 있어
지난 89년부터 모교에 자리를 잡고 강의를 하고 있으며, 현재는 관리처장을 4년째 맡고 있는 관계로 연구보다는 학교 발전을 위한 다양한 사업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10년 만에 고려대학을 방문했다. 너무나 많이 바뀌어 있어 놀랐다. 예전의 고풍스러웠던 건물의 자태는 거의 모두 사라지고 새롭게 대리석으로 장식한 교사들이 완공되어 있었고, 주변의 잔디밭이나 숲속의 모습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새로운 고려대학, 건학100년의 민족사학을 세계적인 대학으로 만들기 위해 장동식 선생이 주도적으로 일하고 있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현재 고려대학에서 새로운 교정을 만들기 위한 조경 사업, 건물을 짓고 증개축하는 일과 학교 전반의 구매업무, 학교법인 중앙학원의 살림을 총괄하는 일을 맡고 있다. 새롭게 발전하고 도약하는 고려대의 미래를 앞장서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바쁜지 평소에는 약속이 5분 단위로 있고, 결재도 시간을 정하여 몰아서 한다. 여름방학이라 조금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하루에도 10여 건의 약속이 되어 있어서, 시간 약속이나 면담은 주로 담당 사무원과 상의하여 빈 시간을 확인하여 잡지 않으면 만나기 힘들 정도로 바쁜 사람이다.
“요즘 저의 고민은 고려대학 건학 100주년을 맞이하여 어떻게 하면 고려대학을 세계적인 대학으로 만들까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한국 제일의 민족사학이라는 타이틀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가 인정하는 대학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학교를 개편해 나가는 장기계획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울러 꾸준한 발전 계획과 아이디어를 생산해 내는 것이 제 업무이기도 합니다. 학교 발전에 관한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언제든 연락을 주십시요” 라며 협조를 구하기도 했다.
고향이 그리우면 늘 평은으로 갑니다.
산업공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그는 <공학개론>이라는 전공서적을 한 권 출간하였으며, 전공 분야와 관련하여 <3차원 반도체리드검사장치>,<자동차안전유리검사를 위한 자동검사 시스탬>에 관한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사실 요즘은 너무 정신없이 바쁜 관계로 빨리 강의에 충실한 연구교수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보직교수로의 역할이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다는 표현으로 들렸다.
장 선생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향 영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어린 시절 놀이터였던 내성천과 아련한 친구들의 이름, 추억에 관한 것. 수영하다가 내성천에 빠져 죽은 짝꿍의 일이며, “강을 보고 있으면 흘러흘러 내려온 자신의 모습도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영주가 더 이상 발전하지 않았으면 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라고 하면서 “옛 추억을 간직한 채 시간이 멈추어진 영주를 자주 상상한다”고 말했다.
한편 그의 형제들은 부친이 워낙 땅이 많고 재산이 많아서였던지, 사업에 욕심이 없는 큰형 동한씨는 중등학교 교사로 평범하게 평생을 살고 있지만, 아쉽게도 둘째형 동일씨는 얼마 전까지 전 재산을 투자해 ‘소백파크관광호텔’을 경영하다가 부도를 냈다. “둘째 형님을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라고 했다. “차라리 호텔사업을 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거나 아파트나 콘도를 지어서 팔았으면 부도는 내지 않았을 것인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영주중학교 출신의 영주에 친구, 친척이 많아
선친이 돌아가시고, 모친은 서울에 올라오신 관계로 “형님이 부도를 내고는 사실 영주에 갈 일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전에는 가끔씩 형님의 호텔을 찾기도 하고 친구와 친척들을 만나기 위해 영주에 가는 일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자주 가기 힘들어졌다고 한다. 아무래도 형님의 사업부도로 영주 가는 길이 부담스러운 듯 했다. 하지만 “고향생각이 날 때면 문뜩 문뜩 떠오르는 내성천을 생각하며 영주로 차를 돌리기도 한다”라고 했다. 아마 고향에 대한 회귀본능이 장동식 선생에게는 내성천이라는 강을 중심으로 떠오르는 것 같다.
영주중학교만 졸업을 하고 어린 시절 서울로 올라 왔지만 영주중학교 동창들의 모임에는 자주 참여하는 편이고, “기회가 되면 영주향우회에도 자주 나가고 싶다”고 말하는 장동식 선생은 사실 영주인들과의 교류를 활발하게 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아무래도 “고향사람이 제일”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와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평은초등학교와 영주중학교 동기생들로 영주시청에 근무하는 장성철, 장태영씨, 고향사진관의 서영준씨, 사업가 장치덕, 김익진씨, 정부출원연구소에 근무하는 송종국씨, 군에서 장교로 복무 중인 윤원희 대령 등이 있다.
아울러 그의 가족으로는 대학 시절 만난 부인과 스물다섯에 결혼하여 미국 유학 중에 낳은 두 아들이 있다. 장남은 대학을 졸업하여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차남은 미국의 뉴욕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현재는 부인과 큰아들과 함께 학교에서 가까운 안암동에서 14년째 살고 있다.
아무튼 고향 후배의 한 사람으로 건학 100주년의 민족사학 고려대학을 세계적인 대학으로 만들기 위해 그 중심에 서서 뛰고 있는 영주 출신의 장동식 교수에게 고향의 이름으로 권투를 빌어본다.
(장동식 교수 연락처 011-394-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