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시인)
오빠
-박후기
오빠는 시간 강사,
몰락한 집안의 기둥이다
경기가 없는 날에도
어김없이 도서관에 들러
무거운 책을 상대로
가볍게 몸을 풀어주는 오빠는
주먹보다 입이 세다
지방 원정 경기도 마다하지 않는
오빠는 믿을 것은
맷집밖에 없다
맞아도 맞아도 쓰러지지 않는 아들,
맞아도 맞아도 돌아서지 않는 애인,
맞아도 맞아도 도망치지 않는 오빠의
터진 입술이 붉은
꽃망울을 터뜨릴 때,
엄마가 운다
싸움을 기다리는 시간이
막상 싸우는 일보다 더
막막하고 두렵다는 것을
대기실에서 청춘을 보낸
오빠는 알고 있다
늦은 밤,
취한 주먹을 툭툭 허공에 던지며
문을 열고 오빠가 등장한다
-문득문득 오빠
요즘만큼 ‘오빠’라는 호칭이 다양하게 쓰이는 때도 없는 것 같아요. 친오빠도 오빠, 남의 오빠도 오빠, 남편도 오빠, 심지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를 따라다니며 열광적으로 성원하는 오빠부대까지 생겨나 판을 치지요. 그러다 보니 오빠의 위상도, 책임감도 슬며시 가벼워지긴 했어요.
그러나 잘 알려진 동요 ‘오빠 생각’에 나오는 ‘비단 구두 사 가지고 오신다던/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라는 가사의 일제강점기 속 아픈 오빠를 시작으로, 오빠도 참 무거운 시기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렀지요.
지금도 “몰락한 집안의 기둥”이든 아니든 “맞아도 맞아도 쓰러지지 않는 아들,/ 맞아도 맞아도 돌아서지 않는 애인,/ 맞아도 맞아도 도망치지 않는 오빠의” 입술은 냉정하면서도 따뜻하게 터지는 집이 많을 테니까요. 그러면서 사레 걸린 가족을 조용히 흔들어 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