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율 (동양대학교 교수)
지난 10월 29일 밤, 가정(假定)으로라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끔찍한 사고가 이태원(梨泰院) 골목에서 발생해 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고 부상을 당함으로써 전국민을 망연자실(茫然自失)하게 했다. 우선 안타깝게 희생된 젊은이들의 영혼이 명복(冥福)을 누리게 빌고 유족들에게도 깊은 조의를 전한다.
아직은 전 국민 애도기간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참사(慘事)를 당한 젊은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부상자 치료에 정성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사고 발생의 원인과 경과, 재발방지책의 마련과 책임 소재를 가리는 일은 애도기간이 끝나고 나서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이번 참사를 이용하여 다른 목적을 이루려는 일군(一群)의 사람들이 있다. 적어도 애도기간만큼은 자제하기를 촉구한다.
다만 조심스럽게 몇 가지를 짚어보자면 이번 참사와 관련하여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차분하게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이념이나 세대, 혹은 지역이나 계층으로 심각하게 갈려 서로 반목(反目)하거나 심지어 상대를 부정하는 등의 행동을 함으로써 심각한 갈등 국면에 매몰되어 이제는 웬만한 갈등은 갈등으로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사회적 의식의 각성 정도가 무디거나 낮아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방미두점(防微杜漸)이나 발본색원(拔本塞源)에 대해서는 눈길조차 주지 않거나 아예 고려의 대상에도 두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무신경하고 낮은 국민 의식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각종 사건‧사고에 쉽게 노출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하루빨리 사회적 감각 회복과 의식의 각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특히 국민의 생명과 재산,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와 정치권의 각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정부나 정치권이 깨어있는 상태라고 보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그러므로 조심스럽지만 이번 기회에 정부나 정치권에게 늘 깨어있으면서 자신들의 임무를 확고하게 인식하기를 권유해본다.
어쨌거나 어떻게 해야 이런 참사를 다시 겪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개인이나 국가, 모두가 경각심을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다시 말해 사고는 언제나 우리 등 뒤에 도사리고 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사고는 그 틈을 파고들어 우리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한다.
하여 언제나 깨어있는 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의식이 깨어있으려면 회헌(晦軒) 안향(安珦) 선생이 제시한 여섯 가지 선비정신의 덕목 가운데 하나인 경(敬)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첨언하면 경의 덕목으로는 주일무적(主一無適), 정제엄숙(整齊嚴肅), 상성성법(常惺惺法), 기심수렴불용일물(其心收斂不容一物) 등이 있다.
‘주일무적’은 하나를 주장하여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 것으로 마음이 언제나 내 몸속에 자리 잡는 것과 같다. 조금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자세이다. ‘정제엄숙’은 자기의 자세를 가다듬어 정돈하고 마음을 엄숙하게 가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상성성법’은 항상 내 의식이 깨어있어서 의식이 흐려지거나 잠들지 않는 법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기심수렴불용일물’은 내 마음을 수렴한 물건도 용납할 틈이 없는 것을 말한다. 위정자를 포함하여 우리 국민 모두가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엊그제와 같은 불행한 참사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경(敬)의 네 가지 조건들을 철저하게 지켜서 수양해 나간다면 불가항력적(不可抗力的)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고를 미연(未然)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선비정신을 말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이런 덕목을 개인이나 국가 모두가 나서서 철저하게 실천에 옮길 때만이 이런 비극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방심(放心)을 경계하기 위해서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이 늘 차고 다니셨다는 성성자(惺惺子)를 온 국민이 차고 다니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짤랑거리며 들리는 성성자의 쇠방울 소리는 해이(解弛)하고 나태(懶怠)해지기 쉬운 우리의 의식과 정신에 정문일침(頂門一鍼)처럼 자극이 되어줄 것이다.
의식이 늘 깨어있으면 사고는 파고들 틈이 없어 결코 우리에게 해꼬지를 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 한번 안타깝게 스러져간 우리 젊은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명복을 빌면서 동시에 유가족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부상당한 사람의 쾌유를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