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대선을 필두로 지방선거, 그리고 선비세상 개장, 세계풍기인삼엑스포 등 굵직한 행사들이 줄지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10.27일 부터 세계인성포럼이 열린다. 국내외 석학들이 모여 정도전의 사상을 살펴보고 희망과 인성의 가치를 진단한다. 사회 참여를 위한 시민적 인성을 얘기하고, 영주- 영주다움에 대한 토론도 진행한다. 특히 영주다움은 영주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선비정신이 키워드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바야흐로 깊어가는 가을의 격조에 맞는 인문학의 시간이다. 먹고 살기도 빠듯한 현실에 웬 인문학이냐 라고 푸념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주장이 일리는 있지만 한편으론 어려울 때일수록 인문학과 인문학적 물음이 필요하리라는 생각도 해 본다. 특히 선비의 고장을 살아가는, 선비의 DNA를 물려받은 영주 시민이라면 말이다. 가끔은 이렇게 말하기도 하지 않던가. 급할수록 돌아가라.
현재는 과거에서 온다. 즉, 현재는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문학도 비슷하다. 예컨대 인문학은 돈 벌이의 도구/수단은 아니지만 왜 돈벌이가 필요한가에 대한 궁금증과 대답의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고장의 선비정신도 두리뭉실 말하자면 일련의 인문학적 태도라 할 수 있다. 개체로서의 존재의 본원적 문제와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 등 본질적인 질문 위에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상당수의 사람들은 선비정신을 주자학의 가르침이나 경전 해석에 매달리는 꼰대적 멘탈mental쯤으로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기억해 두자.
생명은 진화한다. 사상과 학문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시대나 학자마다 해석의 결은 달리 하겠지만 선비정신은 오늘날로 치면 상식과 인문학적 교양으로 무장한 민주 시민의 날선 의식 정도가 되겠다. 이 날선 의식은 삶의 주체로서 사상과 문화를 진단하고, 비판, 분석하는 시선이다. 인문학은 바로 이 시선에 기대어 있다.
선비라는 게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매년 인성 포럼이 열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가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선비 관련 시설을 구축하거나 또는 선비축제를 이어가는 것도 이런 연유이다.
그러므로 세계인성포럼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는 당연히 필요하다. 만일 시민들이 영주다움이나 선비정신에 대해 외면한다면 선비의 고장은 그저 도로변 간판에 다름 아니다. 선비가 없는 선비의 고장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인성 포럼은 비록 3일이라는 짧은 기간 열리지만 시민 모두가 선비가 되어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도 의가 있겠다. 각박한 세상살이일지라도 1년 내내 빵만 생각하며 살 순 없는 노릇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