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모은 값비싼 옛물건 고향에 기증하고파

경로당지도자교육 시 인사말씀
경로당지도자교육 시 인사말씀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페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공직 생활, 황씨종친회 활동, 노인회 활동 등 맡은 일에
열정적으로 임하면서도 서예를 늘 함께..
서예 및 한학을 하는 고향 사람들과 모임을 하고파

대한노인회 서울시 영등포구 지회장으로 금년 봄 재선한 황무섭 회장을 만났다.

영등포구는 인구 38만명에 관내 국회의원이 2명이며 경로당만 167개에 이른다.

지난 2018년 대한노인회 영등포구지회장으로 취임한 황무섭 회장은 금년 경선을 통해 60% 가까운 지지로 재임을 하게 되었다.

황무섭 회장(이하 ’황회장‘으로 표기)은 봉현면 출신이다.

황회장은 한국황씨중앙종친회 회장, 성균관 유도회 수석부회장, 성균관 유림 서예작가회 초대회장, 국가보훈문화예술협회 초대 작가 및 심사위원장, 서예작가회 초대회장, 한국석봉미술협회 심사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고향을 사랑하여 재경 봉현면 향우회장으로 활동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대한노인회 영등포구지회장에 중임되셨음을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경선을 통해 재임하게 되었는데 지난 임기 동안 제가 회장으로 못다 한 일을 마무리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노인의날 인사말씀
노인의날 인사말씀

대한노인회 영등포구 지회를 소개하시면?

영등포구는 38만 명의 인구에 국회의원만 둘입니다. 경로당은 167개에 이릅니다. 올해 초 재선 회장으로 선임되었습니다. 영등포지회는 1965년도에 창립되었습니다. 노인 일자리 관련 사업을 하며 노인대학 프로그램 등을 통해 노인들이 여가를 활용하여 취미 등 자신이 하고 싶은 활동을 하도록 지원합니다.

노인회장을 하면서 보람을 많이 느낍니다. 영주 시골에서 올라와 중앙에서 노인회장을 하면서 노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할 기회가 주어졌음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현재의 노인들은 우리나라가 발전하는데 자신을 희생한 세대입니다. 이들을 위해 활동할 수 있으니 보람이 큽니다.

제가 직접 쓴 붓글씨를 족자에 담아 관할 167개 경로당에 걸었습니다. 각 경로당 회장들은 교사, 경찰, 군인 등 전문직 출신이 많은 등 수준이 높은 분들입니다.

서예로 하는 새해맞이 덕담
서예로 하는 새해맞이 덕담

노인회장을 하시면서도 서예 지도를 꾸준히 하신다구요?

서예는 단순 글씨가 아닙니다. 서예에는 삶의 지혜가 들어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붓을 잡았으나 제대로 된 서예 입문은 삼여재 김태균 선생에게서 지도를 받으면서부터입니다. 당시 철도 공무원으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틈나는 대로 영주에서 삼여재 선생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십여 년을 삼여재 선생 문하에 출입하면서 서예를 배우고 서울에 정착해서는 삼여재 선생의 당부로 우편으로 글씨를 주고받으며 배웠습니다. 삼여재 선생이 최근 돌아가셔서 참 안타깝고 슬펐습니다.

노인회장으로 활동하는 지금도 네 군데에 고정적으로 출강하면서 서예를 지도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서예를 가르쳤습니다. 지금까지 제게 지도받은 사람들 중 서예로 작가가 된 이가 약 300명에 이릅니다. 서예 지도는 제게 큰 보람이고 재산입니다.

저는 서예와 함께 하는 삶을 삽니다. 노인회에 참여하며서 가훈써주기를 했습니다. 한국황씨중앙종친회 활동을 하면서 종친들에게 가훈 써주기를 했습니다. 우리 옛 선비들은 집에서부터 사회를 발전시키는 인성이 길러진다고 보았습니다. 가훈은 그 집안의 가풍을 느끼게 하는 아이콘이기도 했습니다. 가훈을 고민하고 가훈을 지키며 사는 풍속이 다시 생겼으면 합니다. 가훈이 사라지는 시대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우리집 가훈 써주기 운동
우리집 가훈 써주기 운동

서예전시회도 많이 하셨겠습니다.

매년 작품전시회를 갖습니다. 국내 전시회는 말할 것도 없고 해외 전시회도 많이 했습니다. 유럽에만도 서예전시회를 12번 했습니다. 유럽 전시회는 파리를 거점으로 하여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서예전시회를 했습니다. 중국에서의 전시회는 횟수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습니다. 지금의 k-문화가 세계적 환호를 받는 걸 보면 참 기쁩니다.

고향에도 자주 오신다면서요?

코로나19 발발 이후에 고향을 자주 찾지 못했습니다. 어떤 때는 서예전시회 때문에 해외에 나가 있느라 고향 행사에 참석치 못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대한노인회 영등포지회 회원들과 버스 7대에 분승하여 영주 소수서원과 선비촌에 갔습니다. 영주시 노인회 황기주 회장님을 비롯 영주시 노인회 회원들과 영주시 공무원들이 환영을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당시 영주시민회관에 모여 영주시 노인회를 비롯하여 많은 분들과 상견례를 했습니다. 버스를 이용하여 단체로 움직이니 고향의 친인척과 지인들을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고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제가 젊은 시절부터 모으기 시작한 골동품이 많습니다. 고향에 기증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모은 옛물건(골동품)에는 귀중한 책도 있고, 선비들의 간찰(편지)도 있고, 증빙문건 같은 것도 있습니다.

TV ’진품명품‘에 나가 고가로 평가받은 옛물건도 있습니다. 진기한 수석도 많이 모았습니다. 개인이 갖고 있기보다 관심 있는 사람이면 볼 수 있도록 하는 곳에 기증하려 합니다.

재경 봉현면 향우회장도 하셨는데 기억나는 보람이 있으면 소개 부탁합니다.

봉현면 향우회장을 하도 오래전에 하여 기억이... 지금도 봉현면 향우회가 잘 활동하지만 제가 향우회장을 할 때 참 열심히 다들 참여하셨습니다. 제가 봉현남부초등학교 출신인데 봉현남부초등학교와 통합된 봉현초등학교의 폐교 위기 소식에 향우회원들과 성금을 모아 학교에 전달했습니다.

이 때 봉현초등학교가 영원히 지속하라는 염원을 담아 ’永生不滅‘ 친필액자도 전달했습니다. 봉현면 향우회장을 하며 재경 영주시향우회, 풍우회 등과 함께 했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한국황씨중앙종친회장도 역임하셨지요?

2015년 2월에 취임했습니다. 한국황씨중앙종친회는 회원만 전국 70만명으로 1964년에 창립된 단체입니다. 황씨는 특이하게도 세계종친 모임을 갖습니다. 저는 회장으로 선임되기 전에도 세계황씨 총회에 단장으로 두 번 참석했습니다.

역대 회장은 황경로 한국금박 회장, 황대봉 대아그룹 회장, 황인성 전 국무총리 등 정∙재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던 분들이지요. 제 후임으로 황우여 전부총리가 선임되셨지요. 중앙종친회는 가전충효, 종친돈목, 중조경종을 종훈으로 합니다. 재임 중 회계를 투명하게 하고 각 지역의 황씨 모임들을 활성화 하고자 했습니다.

당시 사무국장으로 영입한 황규석 사무국장의 노고가 컸습니다. 황규석 사무국장은 대기업의 대표를 하던 분으로 전국 황씨의 족보를 인터넷으로 구현하는 큰일을 했습니다. 회장으로 재임하기 전부터 시작한 종원들 가훈 써주기 운동도 계속했습니다.

성균관 유도회 활동도 활발하게 하셨지요?

성균관 유도회는 약 10년 이상 활동했습니다. 일반 회원으로 그리고 수석부회장으로 봉직했습니다. 성균관 유도회 활동을 할 때에도 서예 프로그램을 포함했습니다. 서예유림대회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한학에도 조예가 싶으시다 들었습니다.

어릴 시절, 현 풍기향교 전교인 권오창 전교의 선친으로부터 글을 배웠습니다. 그분의 사랑방에 다니면서 한학을 배우며 사랑을 받았습니다. 또 조선의 마지막 급제자로 유명한 금주 황헌 선생의 지도도 받았습니다. 금주선생은 우리 큰집에 자주 오셨는데 그때마다 지도를 받았습니다. 금주선생은 한 번 오시면 한 달 이상을 지내시기도 했습니다.

금주선생은 이렇게 열심히 하니 나이 들면 과거시험에도 합격하겠다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 후 한학 지도를 받지 못했으나 그때 배운 한학을 참 요긴하게 활용했습니다. 또 지속적으로 한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한학은 서예의 삶을 사는데 지속적 도움이 되고 조상의 초기 터전인 평해 황씨시조단에 가서도 중책을 맡았습니다.

고향에는 옛터가 남아 있나요?

봉현면 노좌에 땅이 있습니다. 귀향하여 작은 집을 짓고 밭 가꾸며 서예를 하며 살고자 했습니다. 정원수도 여러 나무 심고 정원석도 많이 갖다 놓았습니다. 대한노인회 영등포지회 회장을 하며 서예 지도를 매주 여러 번 하다 보니 귀향할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고 이미 나이가 너무 들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아들 하나(셋째)가 고향을 지키고 있습니다.

고향 관련 질문을 많이 드립니다. 고향과 관련하여 생각나시는 것은 무엇인지요?

고향을 떠난 지 참 오래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나이에도 고향에서 살던 때에 관한 기억은 늘 현재처럼 생생합니다. 서울에서 서예, 종친회, 노인회 등 여러 활동을 하면서 고향 사람들을 만나면 반갑습니다. 서예를 하는 후배들 중에도 고향 사람들을 발견하곤 합니다. 고향 후배들 중 서예나 한학을 하는 사 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졸업 후 철도 공무원으로 들어가 43년 봉직했습니다. 영주는 당시 철도의 중심지였습니다. 영주역의 차장으로 근무할 당시 영암선(영주~철암) 화물 기차를 타고 오간 힘든 기억도 납니다. 직원 대상으로 매년 열리는 전국 역명 외우기 대회에서 간이역도 포함하여 모든 역 이름을 외워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천재라고 주변에서 추켜세웠지만 전국 철도역 이름을 외우기 위해 암송하고 다니곤 했습니다. 철도 공무원으로 철도 공무원들의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노조 활동도 했습니다.

황재천 프리랜서 기자/ 오공환 기자

황무섭 회장 프로필

- 봉현남부초등학교 3회,
- (현)대한노인회 서울 영등포구지회장
- (전)전국철도노동조합 교육국장, 복지국장
- (전)영등포구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 (전)한국황씨중앙종친회 부회장, 종사보존위원장, 회장
- (전)세계황씨종친회 한국 단장
- (전)한국석봉서예협회 심사위원장, 성균관유림서예 심사위원장, 성균관유립서예작가회 전국총회장

- 수상 : 옥조근정훈장, 국가보훈문화예술협회 문화대상, 국가보훈문화예술협회 최우수지도자상, 자랑스런 특별宗人 문화예술상

- 저서 : 필묵소저(도록), 황현대사성선조조정실록, 퇴계선생성학십도 해설, 존경도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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