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

등의 비애

-최수진

이별은 왜 항상 뒤돌아가야만 완성되는지
네 그림자는 오후 늦게 더 길어지고 있어
네가 나에게 등을 보이는 이유는
등이 앞이 아니라 뒤에 있는 까닭은
지독히 단순해서 잊기 편하기 위함이 아닐까?
너의 화려한 눈코입에 홀린 내 머릿속은
그림자를 끼고 멀어지는 너에게 적지 않게 혼란스럽지만
이별은 늘 앞으로만 나아가기 때문에
뒷걸음질하지 않는다는 어떤 약속을 받아들이려 해
네 등에 적힌 묵묵히 걸어가겠다는 삶의 의지를

 

-등도 기적

‘내 웃음이 억지스럽거든, 내 말이 건방을 떨거든 당신은 주저 없이 돌아서도 돼요. 그러나 뒤돌아보지는 말아주세요. 길어지는 그림자 사이로 돌돌 말린 등을 들키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좋게만 보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까요? 제가 준비해 둔, 이별이 올 때 내뱉을 속말이에요. 구부린 등 뒤의 커다란 공백의 비밀을 더는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요.

사람은 누구나 두터운 페르소나를 하나씩 뒤집어쓰고 삽니다. 얼굴은 화려한 표정으로 심장은 두꺼운 살로 숨길 수 있지만, 고스란히 노출되는 등은 무엇으로 가릴까요. 이별도 등에게는 친절하지 않은 것 같아요. 등의 기분은 조금도 생각지 않고 있어요. “지독히 단순”한 모습으로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보여줘 버리네요. 애초에 등의 애정도 따윈 재지도 않았지만, 딱 아프겠다 싶은 만큼만 올라타 있어요.

그러나 이 시를 몇 번 더 읽다 보면 오히려 결핍 같은 건 보이지 않아요. 슬픈 감정이 언제까지나 끌려가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으니까요. “묵묵히 걸어가겠다는 삶의 의지”가 비애의 정직함을 틈타 “뒷걸음질하지 않”고 다시 회복되리라 믿습니다. 오늘은 좀 짜지만, 내일의 단맛을 위해 깊은 상념 속을 걷고 또 걸을 테니까요.

응원 하나 띄울게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앞모습도 옳고 뒷모습도 옳습니다. 그래서 등도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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