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율 (동양대학교 교수)

영주가 선비 도시를 표방하고 모든 역량을 시민의 선비화, 영주시의 선비 도시 만들기에 집중하기 시작한 이래로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일정한 성과도 거두었다고 하겠으나 아직도 갈 길은 멀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영주시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선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도자의 자질은 무엇보다 진정한 선비 됨에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선비의 주요 덕목 가운데서 모범(模範)이라는 가치가 있다. 이 모범의 가치는 세상의 모든 지도자에게 공통으로 요구되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모범은 단순한 행동의 모방 대상이 아니다. 도리(道理)에 가장 합당하여 누구나 본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모범을 보이고 그것을 본받는 하나의 행동 고리가 지금까지 인류사회를 수준 높은 문명사회로 지탱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부모가 자녀에게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형제자매가 서로에게 모범을 보이지 못하며 스승이 제자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모범을 보이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인류사회는 정상적인 유지가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말과 행동의 이상적인 모범을 본 적이 없어서 그 모범을 본받지 못하게 되니 정상적인 행동의 가치 기준을 내면화시켜 자율적으로 행동해 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모범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방증(傍證)해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는 욕설(辱說) 가운데 가장 심한 욕설이 무엇일까? 많은 이들은 사람의 신체와 관련된 욕설이라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 조선 시대의 욕설에는 형벌(刑罰)과 관련된 욕설이 대부분이었다. 사람의 신체와 관련된 욕설은 근대 이후에 횡행(橫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무튼 가장 무섭고 모멸감(侮蔑感)을 느끼게 하는 욕설로는 의외로 ‘본데없이 자란 놈’이란 말이다. 얼핏 들으면 그것이 무슨 욕설일까도 싶겠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보다 더 큰 욕은 없다. 다른 욕은 피상적인 욕에 그치지만 이 욕은 사람의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욕이기에 그렇다.

이런 욕을 듣지 않으려면 우리는 언행을 포함한 모든 부문에서 모범을 보여야 하고 또 그 모범을 부지런히 본받아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선비란 바로 사람으로서 가장 도리에 맞고 보편성을 지닌 모범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부모가 되고 형이나 누나, 언니나 오빠, 스승이나 선배, 상급자가 되는 사람은 무엇보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모범이 되는지를 늘 자신에게 되물으며 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교육활동이라고 어느 누가 쓴 글을 본 기억이 있다. 사람들은 곧잘 정치가 모든 인간 행위를 포괄한다고 하지만 필자는 정치가 아니라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성세대(旣成世代)는 누구든지 교육자라는 생각이나 철학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열자(列子)・설부(說符)⌋편에 이런 말이 있다. ‘形枉則影曲.形直則影正.然則枉直.隨形而不在影.(형왕즉영곡.형직즉영정.연즉왕직.수형이불재영.)’이라고. 즉, ‘형상이 굽으면 그림자가 굽고 형상이 곧으면 그림자도 바르다. 그러한즉 굽고 곧은 것은 형상을 따르는 것이지 그림자에 있지 않다.’라는 의미이다. 그렇다. 형상을 굽게 해놓고 그림자가 곧기를 요구할 수 있겠는가?

선생, 선학인 우리 기성세대 모두는 바로 후생, 후학들의 지도자이다. 지도자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 모범은 바로 선비에 있다. 선비의 자질을 갖추면 지도자의 자질은 어느 정도 담보된다. 물론 지도자의 자질과 덕목에는 이외에도 더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

조직이나 기관의 규모와 등급이 높아질수록 지도자의 요구 조건이나 덕목은 더욱 까다롭고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어떤 지도자라도 기본적으로 요구받는 자질은 생각과 말과 행동의 모범이니 이를 충족시키려면 바로 선비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선비는 매사에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니 나부터 이런 자질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선비인지 자신에게 맹성(猛省)을 촉구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선비가 아니라면 선비가 되기 위해 각고(刻苦)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선비가 되면 지도자가 될 자격이 일단은 갖추어졌다고 하겠다. 진정한 선비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영주시 시민 모두가 선비가 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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