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경 (수필가)
바야흐로 공감의 시대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자세이며 상대의 감정을 마치 자기 일인 양 집중하면서 그 기분이 되는 것이다. 공감을 통해 우리는 삶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으며 부족하고 소외된 것에도 눈길 한 번 더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요즘같이 불안정한 시대에 공감만큼 좋은 위로도 없을 것이다. 사람 사이에서 소통이 어려운 건 공감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뤄 대화에 집중하며 잘 들어줄 때 안정된 소통은 이루어진다. 소통에서 중요한 건 공감을 어떻게 형성해 나가느냐의 문제다. 위로랍시고 한 말이 조언과 충고가 되어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해선 안 될 것이다.
조언과 충고는 결국 자신을 위한 설명이지 상대에 대한 진정한 위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의도로 이야기한 것이 가엾고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비춰선 안 될 것이며,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진실을 굳이 상대에게 설득할 필요도 없다. 불필요한 조언과 충고는 관계만 틀어지게 할 뿐이다. 공감이 제 기능을 발휘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이해 못 할 일도, 용서 못 할 일도 없을 터,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이야기를 상대가 관심을 갖고 잘 들어줄 때 마음을 열게 된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준다는 건 그 어떤 것보다 가치 있는 일로 삶의 만족도를 높여준다. 타인으로부터 감정을 인정받는다는 건, 존재에 대한 확신으로 내 안의 잠재력을 키워 자신감을 얻는 일이기도 하다.
누구든 힘든 이야기를 할 때면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의 중심에 서고 싶어 한다. 공감에서 중요한 건 경청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로할 때는 상대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질문을 유도해야 한다. 조개 해감법처럼 소금을 넣고 깜깜한 곳에서 스스로 입을 벌릴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면 조개는 시간이 지나면서 누구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입을 벌리게 된다. 상대가 스스로 입을 벌릴 수 있도록, 답답한 마음을 실컷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로 공감과 위로의 대화법이다. 조개처럼 스스로 입을 열어 말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자세, 이보다 더 좋은 위로는 없을 것이다.
공감은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도 하지만, 대화에서 두려움을 멀리하게도 한다. 개인마다 그 사람이 지닌 감정은 소중하다. 감정 앞에선 어떤 기준도 우위에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대화에서 상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삶의 가치와 의미를 어디에 두는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의 욕구에 반응을 보여 감정을 존중해 줄 때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대화에서 그냥 듣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 집중하며 언어와 몸짓을 통해 그 마음을 헤아릴 줄 안다. 상대가 내뱉는 말을 단순히 그냥 흘려듣는 게 아니라 가슴을 열어 진정성 있게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상대가 하는 이야기에 최선을 다해 경청한다는 뜻이다. 간혹 무리에서 공감을 못 해주는 이가 있어도 그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개인마다 가치관이 다르기에 그 세계 또한 존중해 줘야 한다. 공감 이상으로 중요한 게 있다면 각 개인의 세계를 인정해 주는 일이다.
공감은 능력이 아니다.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그 기능을 키워낼 수 있다. 누군가를 공감한다는 건 마음 깊은 곳까지 들어가는 것으로 상대가 바라는 것을 향해 나란히 동행해주는 일이다. 주위로부터 쉽게 흔들리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잡아주며, 뜻하지 않는 돌발 상황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게 마음을 동여맬 버팀목이 되어 주는 것이다. 공감은 언제나 진실을 동반한다.
대화를 할 때 전체 맥락을 이해하면서 상대가 내뱉는 말의 전후와 태도, 그의 행동을 통해 진짜 감정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을 읽는다는 건 상대의 감정을 아는 것으로, 그가 추구하는 진실과 바람을 이해한다는 의미다. 진정 상대가 원하는 소중한 그 무엇인가를 찾아낼 때 관계의 끈은 형성될 수 있다.
공감의 시대, 우리는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말은 하지만 결코 모두를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이해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