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시인)

-이봉주

모임에 나오지 않은 그를 누군가 험담을 한다
나도 분위기에 휩쓸려 동조를 한다

취기로 충혈된 불판 위에 불연소 된 말들이 바람으로 흩어진다

그를 석쇠 위에 놓고 조각조각 뒤적이다 돌아온 날

온몸에 가시같이 박힌 후회가 나를 뒤적인다

그의 등 뒤에 화석처럼 부서진 말들을 주소 없는 봉투 속에 밀봉한다

 

-말의 저쪽

혀만 무진장 긴 사람들이 있습니다. 편해진 사이에서 만만해진 사이로 한 끗만 넘어가면, 화술보다 심술에 취한 건지 본인도 모르게 말로 무례를 저지르고 맙니다. 상대의 온순함을 틈타 펼쳐 놓은 안전망 사이로 흘릴 건 다 흘려 버립니다.

말로 씹는 안줏거리가 있어야 흥이 도는 모임이 되는 게 세상 이치일까요? “취기로 충혈된자리에서, 그것도 고기를 구우면서 나누었던 험담은 이미 천리만리를 가고 있는데도요. 고기처럼 말도 잘 구우면 더할 수 없는 맛이 나지만 설 익히거나 태워버리면 틀려먹은 말맛이 됩니다.

앞에서든 뒤에서든, 누구나 험담을 듣게 되면 마음의 장벽을 두릅니다. 그래서 그를 석쇠 위에 놓고 조각조각 뒤적일수록 마음만 자꾸 꾸깃꾸깃해집니다.

이 시는 많은 생각과 반성을 하게 합니다. 내가 내 혀에 먹히는 순간이 오지 않도록, 이제라도 능수능란한 혀를 조금은 무겁게 해야겠습니다. 그래도 날뛰는 혀를 어쩌지 못한 날에는 그의 등 뒤에 화석처럼 부서진 말들을 주소 없는 봉투 속에죄책감처럼 꼭꼭 밀봉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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