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복 (소백산백년숲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비가 그치고 비탈진 흙길을 달려 내려오는 폴 텔로바이의 검은 얼굴에는 하얗게 마른 눈물 자국이 여러 개 나 있었다. 울면서 뛰어오던 그는 거의 넋이 나간 상태였다. 폴 텔로바이는 27년 전, 내가 남태평양 솔로몬군도 초이셀 섬 캠프에서 일할 때 제재공장에서 일하던 직원이었다.

그에게는 13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생전 처음 듣는 총소리에 놀라 모두가 숲으로 도망칠 때, 그는 아내와 함께 아이들을 업고 안고 손을 붙들고 숲으로 달아났었다. 숲에 도착해서 아이들을 세어보고서야 아홉째가 없는 것을 알아차린 그가 넋이 나가 달려 내려오던 참이었다.

그날 폴 텔로바이의 아홉째 딸은 피난하는 이웃들과 함께 숲으로 가서 무사했었다. 웃지 못할 그 날의 이별 가족은 당일에 상봉했지만, 그집 아이들이 그렇게나 많았느냐는 것은 오래도록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솔로몬 군도는 필리핀 남쪽에 있는 파푸아뉴기니의 동남쪽, 호주의 동쪽 남태평양 바다에 줄지어 있는 섬나라다. 파푸아뉴기니 부겐빌 섬에는 전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반군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종종 관심을 끌고자 작은 모터보트를 타고 이웃 섬들을 돌며 해안가 마을을 향해 실탄 한 발씩을 공중을 향해 쏘고 다녔다. 그런데 그때는 국경을 넘어 솔로몬까지 왔었다.

총소리를 처음 듣는 원주민들은 공포에 질린다. 캠프의 직원들도 모두 공장을 멈추고, 불도저를 놓아두고 가족을 챙겨 숲으로 달아났다. 반군들이 모두 달아나고 상황이 종료되었어도 겁에 질린 사람들은 숲에서 나오지 않았다. 회사가 나서서 솔로몬군도 나라에 1척 뿐인 경찰 경비함을 수도에서 불러오고, 무장한 경찰들을 주둔시켜 보초를 서게 하고 보름이 지나서야 사람들은 숲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말라리아를 앓고 난 후에야 일상이 회복되었다. 아이를 잃어버리고 울며 내달렸던 폴 텔로바이는 남자들의 놀림감이 되었고 여자들에게는 부성애의 표상으로 회자 되었다. 그는 그 후로 아이 둘을 더 낳아 자녀가 열다섯 명이 되었다.

지난 5월 27일, MBC는 머스크 "한국,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 붕괴 겪는 중"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MBC뿐만 아니라 대부분 언론이 일론 머스크가 세계은행이 발표한 2020년의 각국 합계출산율 데이터를 소개하며 ’한국과 홍콩이 인구 붕괴를 경험하고 있다‘는 내용의 트윗을 일제히 다루었다.

2020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84로 200개 국가 중 가장 낮았다, 이대로 3세대가 지나면 인구가 300만 명 수준으로 감소한다고 전했다. 수십 년 전부터 노령화 국가의 대표적 사례였던 일본의 1.34명에 비해서도 현저히 낮은 수치였다. 합계출산율은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집값이 비쌀수록 낮다. 2021년 수치를 보면 서울이 0.62로 가장 낮고 부산, 인천, 대구, 대전, 전북, 경기 순으로 낮았다.

세종특별시가 1.27, 전남이 1.02로 1.0을 겨우 넘겼다. 일론머스크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한국의 인구 붕괴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 사회는 리프팅 보트를 타고 아득한 낭떠러지 폭포를 향해 다가가면서도 손을 흔드는 것처럼 무심한 듯하다. 진지한 담론이 없는 것이 개탄스럽다.

합계출산율이 이렇게 낮은 것은 사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털어서 주택에 매립하게 하는 수도권 집중, 약자에게 가혹하게 유연하고 강자에게 과도하게 호의적인 노동환경, 인서울만 살아남는 서열화된 대학입시, 사회 문제를 언급조차 못 하는 비이성적인 정치. 이런 것들로 앞날을 전망할 수 없는 이들이 결혼을 미루고 출산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며 드러난 결과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의 솔로몬군도 캠프의 직원들은 주변 원주민 마을 주민들에 비해 아이를 많이 낳았다. 300명 가까운 직원들의 급여 수준은 높은 편이었다. 캠프 안에는 누구든 가리지 않고 진료해주는 의사가 있는 병원이 있었다. 종교를 구분해 초등학교도 있었고 회사는 벌채한 임지에 묘목을 심으며 장기계획을 가지고 경영하고 있었다. 미래에 대해 불안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많은 자녀를 두게 된 요인이 되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인구 붕괴 상황 속에서도 지역별로 극단적인 양극화가 일어날 것이다. 어디는 소멸하고 어느 지역은 번영할 것이다. 시민의 삶을 질적으로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한다. 표피적인 출산장려정책으로 모성을 욕되게 할 만큼 시간이 많지 않다. 요동치는 세계질서, 에너지와 기후위기의 거칠고 높은 파도 속에서 해답을 찾아야만 하는 역설적인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영주가 번영하는 지역으로 남기 위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탐구해야 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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