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복 (소백산백년숲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우리 인간은 먹고 마시고 숨 쉬는 일체를 환경에 의존한다. 우리 스스로 환경의 일부고, 환경 그 자체이기도 하다. 우리는 서로가 내뱉은 숨을 나누어 호흡한다. 먹고 마시고 배설한 것을 다시 먹고 마시는 순환 속에 견고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수질, 대기, 생태 등의 환경은 유한한 것이다. 누군가가 과하게 소모하면 모두가 그 피해와 불편을 당하게 되어 있다. 산업 분야에서도 환경문제는 업종의 존폐를 좌우해 왔다. 한때 풍기의 대표 산업이었던 레이온 산업이 그 예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유럽에서 개발된 레이온은 면과 펄프를 강한 산으로 용해해 재결합시킨 인조섬유다. 나일론이 개발되기 전까지 레이온은 다양하게 사용되었고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섬유이다. 레이온 제조공정의 유해성으로 인한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해 인견(Artificial silk)으로 바꾸어 부르고 있지만, 제조공정의 유해성이 해소되지 않은 채 의식이 부족한 지역으로 옮겨가 지금도 생산되고 있다.

1960년대 초, 화신그룹이 일본 도레이레이온의 낡은 비스코스 레이온 설비를 들여와 공장을 지었다. 몇 차례 주인이 바뀐 끝에 원진레이온이란 이름으로 운영되던 공장은 이황화탄소(CS2) 중독을 일으켜 근로자 8명이 사망하고 637명이 장애를 입는 역사상 최악의 환경피해를 일으키고 1993년에 폐쇄되었다. 그리고 그 낡은 설비는 다시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의 국영 화학섬유총공사에 매각되어 현재도 가동 중이다. 국내의 레이온 산업은 원단 또는 원사를 수입에 의존하는데 대부분이 중국산이다.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산업은 원진레이온 예에서 보듯이, 피해를 경험하고 인식한 지역이나 국가에서 그러지 못한 곳으로 이전되는 경향이 있다. 반도체 공정에서 사용되는 불소가스도 그 위험성으로 인해 반도체 제조공장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다시 한국과 대만으로 이전된 산업 분야다.

반도체의 설계는 미국과 유럽기업이 하고, 장비와 부품은 미국, 일본, 유럽에서 만들고, 제조는 한국과 대만에 맡겨진 것이 현재의 반도체 공급망이다. 국가나 지역이 어떤 산업을 유치하거나 방출하는 것은 오롯이 그 시민들의 의식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시민의 의식 수준에 따라 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산업전략에 반영된 결과 유해산업은 방출되고 의식이 부족한 곳으로 이전되는 것이다.

적서농공단지 재활용 납 용융공장 설립 문제가 불승인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시민단체가 나서서 그 위험성을 알리고, 공장설립승인 과정의 절차적 하자가 밝혀진 것이 결정적이었지만 발 빠르게 대책위가 결성되고 축제와 같은 성숙된 반대운동이 전개된 결과다. 영주 시민의 환경에 대한 의식 수준이 그만큼 높음을 입증한 것이다. 영주에는 알루미늄 용융공장, 불화수소 공장 등 환경 유해 위험성이 높은 시설들이 있다. 고용을 유지하여 지역경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이들이 있어서 우리가 잃는 것은 없을까? 이들 기업들이 영주의 미래와도 부합하는가? 영주의 선택에 의한 것인가? 아니다. 오히려 영주가 선택되었다고 보아야 맞다. 원료와 제품의 수송에도 불리하고, 연료를 공급받기도 불리한 입지에도 불구하고 영주에 설비를 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대한민국 헌법 제35조 ①항에,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환경권을 적시하고 있다. 어떤 산업을 지역에 유치하여 육성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뜻대로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스스로 시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방향으로 환경 비전을 세우고 산업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남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내린 결정에 따라 영주의 미래가 훼손될 것이다.

영주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나는 우리 영주가 어떤 고장이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을 들어본 적이 없다. 어떻게 하면 쾌적한 환경을 누리며 풍요롭게 살 수 있을까? 공단을 조성해 놓고 땅값을 보전해 주지 않아도 기업들의 입주 신청이 쇄도하게 만들 방법은 없을까? ‘그런 것이 있기나 하겠냐’는 냉소는 접어두고 그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이번 납 용융공장 사태에서 드러난 것은 지역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 시민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환경에 해로울 수 있는 산업에 대해 시민 대의기관인 시의회에 보고나 승인을 받도록 하는 입법이 이루어진다면 이번 일과 같이 방출된 환경위해 시설이 은밀하게 영주로 이전하려는 시도 자체를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 미래상에서 부정적인 것을 제거해 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아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을까? 쾌적하고 풍요로운 영주의 미래를 담보할 제도를 서둘러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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