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인생 55년, 묵묵히 화가의 길을 걷다

파도1000호
파도1000호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초등 시절 초상화 그리는 모습에 매료돼 ‘화가의 길’
고교 미술교사로 재직하며 수많은 작품 그려내

“선 하나 그려도 살아있는 느낌이 들게 그리고 싶어”
풍기초 어린이 미술관 ‘꿈꾸는 도화지’에 작품 기증도

현대를 디자인의 시대라고 한다. 디자인, 언뜻 의류 패션을 떠올리나 의식주를 비롯 사람 삶의 전반에 걸쳐있다.

음식도 맛깔나게 보이는 디자인을 한다. 건축물도 디자인으로 단순 미적 차원을 지나 안전과 실용성까지 포함한다.

‘디자인의 시대, 순수 예술이 바로 원천이다.’ 화가 김예순의 말이다.

김예순 화가가 미래 세대가 자라는 초등학교에 미술관을 만들고 아끼는 작품을 기증한 이유이기도 하다.

풍기초등학교는 올해 7월 22일 김 화가의 작품을 기증받아 어린이미술관 ‘꿈꾸는 도화지’를 개관했다. 초등학교에서의 미술관 개관이 최초로 알려지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김 화가는 고향인 영주 바로 이웃인 안동에 거주하며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한국을 빛낸 사람들’, ‘홍조근정훈장’ 등을 비롯한 그의 많은 공적은 이미 한국의 보배임을 보여주고 있다. 고향 영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해 고향을 배경으로 한 작품도 많다.

매일 8시간 이상 그림을 그려 한국 화단의 대표적 인물이 된 김 화가는 (사)한국미술창작미술협회 이사장을 비롯 미술 관련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으며 미술대전, 한국미술창작대전을 비롯 여러 미술대회 심사위원과 운영위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설경
설경

어릴 때부터 꿈이 화가였는지요?

초등학교 5학년 무렵, 그림 잘 그리는 분이 친구집 사랑방에 머물며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림 그리는 걸 보니 신기했습니다. 옥양목이나 명주천을 나무틀에 붙여 팽팽하게 해 놓고 그리는 모습이 멋졌습니다. 당시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때라 저녁이 되기 전 그림을 하나 다 그려내더군요.

친구들이 처음에는 신기해서 같이 구경하다가 나중에는 저 혼자 구경하였습니다. 그분의 그림과 구수한 이야기에 빠졌나 봅니다. 저 보고 훌륭한 화가가 될 것이라고 말을 해 기분이 좋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평생 그림을 추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마을을 떠날 때 남은 물감을 제게 선물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매우 비싼 물감이었습니다.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그 물감으로 그림을 많이 그리셨나요?

웬걸요. 너무 아까워 쓰지를 못했습니다(웃음). 그때부터 그림 그리기 자체가 좋았습니다. 어떤 때는 마당을 깨끗이 쓸고 그 위에 나무 작대기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당시 극장 간판을 그리는 사람처럼 영화 포스터를 얻어와 김진규, 최무룡, 김지미 등 당시 유명 배우들을 그렸습니다.

연필로 그리고 펜에 먹물을 찍어가며 그렸습니다. 만화도 많이 그렸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공원산에 오르면 당시 풍기에서 영주 시내까지 확 트였었지요. 도솔봉이 떡하니 서 있는 모습을 학교를 오가며 매일 보았습니다. 그 모습들을 그렸습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셨군요.

제가 다닌 초중고에 그림 선생님이 없었습니다. 그냥 혼자 그렸습니다. 대학도 그림 전공을 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친정 조카인 풍기고등학교 교장의 영향으로 고등학교에서 책벌레란 소문이 날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분이 안동에 교장 회의차 다녀오시더니 등록금 안 내어도 되니 안동교대를 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안동교대에서 미술부 동아리에 가입했습니다. 당시 교대는 초등학생에게 전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 양성 기관입니다. 화가 교수들도 계셨습니다.

당시 그분들은 한국에서 유화를 그리는 대가급의 분들이라 제겐 행운이었습니다. 당시 그림 작품을 그렸다기보다 그분들 그림을 보고 따라 그렸습니다. 일주일에 그림 세 장을 그리는 숙제가 있었는데 그냥 그려서 내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합격을 해야 했습니다. 저는 미술부여서 그림 다섯 장을 그렸습니다. 숫자로만 보면 그림을 참 많이도 그릴 때였습니다.

파독역사화 -박정희 대동령생가 로비에 전시중(150호)
파독역사화 -박정희 대동령생가 로비에 전시중(150호)

그때부터 화가의 길로 들어서신 건지요?

글쎄요. 시기적으로 어떻게 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안동교대 졸업 후 대구 교원 사생대회에서 경북도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당시 우쭐했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그런데, 그림 실력이 늘지 않았습니다. 영주에 미술학원이 있었는데 가보니 학생들이 석고상 대쌩을 멋지게 하더군요.

집에 와서 혼자 해 보니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미술부 학생들을 데리고 그 학원에 가 그림을 배웠습니다. 당시 약선당 박순화 사장이 고3이었는데 그 학원에서 제일 잘 하더라고요. 그때 안동에서도 그런 학생이 없었을 겁니다. 계속 그림 공부를 하지 않아 안타까웠는데 최근에 그림에 푹 빠져 예전의 꿈을 다시 잇고 있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교사를 하시던 때는 그림 그리기가 만만치 않았겠습니다만.

그렇지요. 초등학교 교사는 전 과목 담당인지라 그림 전념이 힘들었습니다. 행정 업무도 많았습니다. 중고등 미술 교사를 할 수 있는 검정고시 미술과 시험에 응시했습니다. 합격 후 후포고등학교 발령을 받았습니다. 미술 교사로 부임하니 그림을 많이 그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학생들에게 그림 지도하며 저도 그리다 보니 매일 8시간 이상 그림을 그렸습니다. 일과가 그림 그리기였습니다.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수업이 없으니 그림을 그리고, 수업 시간에는 학생들과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웃음).

그때부터 작품을 출품도 하셨겠군요.

미술교사로 근무하며 그림 그리는 시간이 늘어나고 작품도 많아졌습니다. 공모전에 출품하여 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경북에서 최고상을 받기도 하고 전국 미술대전에서 큰 상을 받아 주변의 화제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학생들도 각종 대회에 나가 상을 받으니 뿌듯했습니다.

작품들을 보면 화풍을 추상화로 옮기지는 않으셨군요. 서양화를 계속 그리셨지요?

먹으로 그리는 동양화가 아니면 다 서양화이니 서양화 범위가 매우 넓습니다. 유화 그림을 주로 그렸습니다. 근 55년입니다. 유화는 인간이 만든 가장 성공적 물감이라 하겠습니다. 천년이 지나도 잘 변하지 않는다고도 하지요. 추상화 쪽으로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지금까지 그린 작품이 엄청 많겠군요.

하도 많이 그려서 개수로 얼마인지 모르겠습니다. 큰 그림도 있고 작은 그림도 있으니 일률적으로 몇 개라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작은 크기의 그림도 있고 1000호, 500호 그림도 여럿입니다. 어떤 때는 오전에 한 장, 오후에 한 장을 그렸습니다.

자신의 작품들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그림을 매일 그렸지만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개인전을 50회 가까이 열었습니다. 전시장 갈 때 괜찮게 보이다가 걸어 놓으면 마음에 안 드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그릴 때 마음에 들다가도 그리고 나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대여섯 번 다시 그리기도 많이 했습니다.

후포 바닷가 미술 교사로 근무할 때 교사 그림 취미반을 만들어 바다 그림을 즐겨 그렸습니다. 당시 꽤 노력한 그림이 있는데 후포 앞바다 파도 그림 1000호입니다. 풍기초등학교 미술관에 걸린 그림은 500호입니다. 설경도 많이 그렸습니다. 영양군의 한 고개에 설경을 그리러 많이도 다녔습니다. 대관령도 많이 갔습니다. 새벽 3시 기차를 타고 아침 8시경 부터 설경을 그리곤 했습니다. 2013년 ‘설경 태백’으로 서양화 부문 최고상을 받았습니다.

전부 국내를 배경으로 한 작품인지요?

외국 풍경을 배경으로 한 작품도 있습니다. 앙코르와트를 배경으로 한 작품도 있습니다. ‘앙코르와트 시엠립 시티 옛날 왕궁 유적지’ 그림은 지난해 완성한 작품입니다. 우리나라 경제 부흥의 큰 가지라 할 수 있는 독일 파견 광부와 간호사 관련 그림도 있습니다. ‘파독 시리즈’라 할 정도로 여러 개입니다.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구미 생가에 상시 전시 중입니다.

미대를 졸업하지 않으셨으면서 그림에 전념하신 삶을 지금도 이어오고 계십니다.

그림으로 정규대학을 나오지 않았는지라 더 열심히 했습니다.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끝이 없습니다. 회화 정규대학이 아니지만 안동교대에서 대가급 화가들을 만난 것도 행운입니다. 서울교대 진학을 했더라면 그런 행운을 못 만났을 겁니다(웃음).

내가 그린 그림이라도 개인전을 해야 내 그림을 볼 수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찾을 수 있는지라 농공단지 지하 주차장을 화실로 얻었습니다. 자주 보고 자꾸 보니 고칠 점이 보입니다. 마음을 비워야 제대로 보입니다. 잘 그리려 하지 않고 제대로 그렸는지를 늘 찾습니다.

바로 그런 점이 선비정신이랑 통하는데요.

아이구 무슨... 남을 의식하지 않으려 합니다. 인물화에서 닮은 모습인지를 신경 쓰면 제대로 작품을 못 그립니다. 대중의 환호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물에서 감성이 우러나는지를 봅니다. 인간의 피부 느낌이 있는지를 봅니다. 사람 향기가 나는지를 봅니다. 숨 넘어갈 때까지 주변에 보이는 것들을 그리며 살고 싶습니다. 선 하나 그려도 살아있는 느낌이 들게 그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싶은 작품을 귀뜸이라도 하시면...

태어나 자란 곳을 그리려 합니다. 도솔봉, 연화봉, 비로봉, 금계바위산이 들어 있는 그림을 그리려 합니다. 동양대 쪽 한 지점에 가면 전체가 다 보입니다. 어느 지점에 가야 제대로 보일지를 찾느라 발길을 여러 곳에 하였습니다.

김예순 이사장 프로필

-풍기 금계2리 공원산 아래에서 출생
-풍기초등학교, 풍기중학교
-풍기고등학교 졸업
-안동교대 졸업
-()서양화 작가, 신기회 감사, 안동미협 고문
-()한국미협 상임이사, 신기회 부이사장, 안동예총 이사장

-()‘한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미술부문)’
-‘
한국을 빛낸 사람들(미술창작발전공로대상)’
-‘
홍조근정훈장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한국을 빛낸 사람들 대상
-한국미협 정예작가상

-경북미협 초대작가상
-통일미술대전 초대작가상
-홍조근정훈장
-(전시회)개인전 48, 그룹전 4백여 회

황재천 프리랜서 기자/ 오공환 기자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