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율 (동양대학교 교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에 대한 격언금어(格言金語)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말을 조심하지 않아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말을 언제부터 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말을 하게 되면서 생각지 못한 문제점들도 생겨났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경험칙(經驗則)이 쌓여서 말에 대한 교훈이 만들어진 게 아닌가 생각한다.
말이란 사람의 인품과 격조를 표상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물론 행동으로도 그와 같은 것을 드러내 준다. 그래서 말과 행동은 사람의 모든 것을 드러내어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여 예로부터 선인들은 말에 대한 경계를 많이 하였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의 「언어편(言語篇)」에는 ‘구시상인부(口是傷人斧)요 언시할설도(言是割舌刀)라’- 입은 바로 사람을 상하게 하는 도끼며, 말은 바로 혀를 베는 칼이다- 하였다. 입과 칼을 잘못 놀리면 도끼와 칼은 곧바로 자신을 향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만큼 잘 사용하면 유용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엄청난 폐해가 자신에게 닥친다는 것이다.
또한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의 사람인 엄군평(嚴君平)은 ‘구설자(口舌者)는 화환지문(禍患之門-화환의 문)이요 멸신지부야(滅身之斧也)라’ -입과 혀는 몸을 망하게 하는 도끼- 하였다. 앞의 말과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런 말도 있다. 바로 ‘주봉지기천종소(酒逢知己千鍾少)요 화불투기일구다(話不投機一句多)라’-술은 나를 알아주는 친구를 만나면 천 잔도 적고, 말은 기회를 맞추지 않으면 한 마디도 많다- 이 말은 말을 해야 할 최적의 때에 말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에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보면 기가 막힐 지경이다. 비단 지금뿐만 아니겠지만 갈수록 말이 눈에 띄게 거칠고 야박해지고 있다. 정치인들은 편을 갈라서 자기편은 무조건 감싸고 상대편에 대해서는 독설(毒舌)을 넘어 아예 저주(咀呪)를 퍼붓고 있다. 심지어 살을 베고 소금을 집어넣는 듯이 아리는 말들을 마구 내뱉고 있다.
꼭 말을 그렇게 야박(野薄)하고 무례(無禮)하며 표독(慓毒)스럽게 쏘아붙여야 속이 시원한지는 모르겠다. 그 말을 듣는 국민들은 안중(眼中)에도 없는 듯하다. 이것은 국민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행위로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정치인들에게 말을 함부로 하도록 우리 국민 누구도 그러한 권한을 위임한 적이 없다.
국민을 위해 제대로 된 정치를 하라는 권한은 위임한 적이 있어도 무지막지(無知莫知)한 망발(妄發)을 쏟아놓도록 위임한 적은 결코 없다. 참으로 듣기 민망하다. 정말이지 국민 노릇 하기도 점점 힘들어진다. 특히 국민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정치인들의 말을 듣자면 「통감절요(通鑑節要)」의 ‘불가사문어인국(不可使聞於隣國-이웃 나라가 듣게 해서는 안 된다)’을 실감하게 된다.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무릇 정치란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龜鑑)이 되어야 하는 고도의 교육행위(敎育行爲)라고도 할 수 있다. 정치만큼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수단도 별로 없어 보인다. 아무리 가정이나 학교에서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도 정치인들이 교육적인 관점을 망각하고 함부로 말과 행동을 하게 되면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은 순식간(瞬息間)에 무너지고 만다. 한번 무너진 것은 다시 일으켜 세우기가 어렵다. 마치 깨어진 사발 그릇을 다시 붙이기가 어려운 것과 같다.
그런데 막말하는 것은 정치인만이 아니다. 어쩌면 정치인들이 모범(?)을 보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제는 국민 상당수가 다반사(茶飯事)로 하는 막말과 독설을 심상(尋常)하게 듣게 된다. 사회가 이렇게 막장을 향해 달려가서는 정말 곤란하다. 사회의 수준과 국가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막말과 독설은 우리 사회에서 추방되어야 한다.
먼저 정치인들부터 대오각성(大悟覺醒)하여 야박한 말을 여유롭게, 차가운 독설을 화기롭고 부드러운 온화(穩話)로 바꾸어야 한다. 즉 정치인부터 언어를 순화(醇化)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사회의 모든 부분을 선도(先導)해 나가는 집단이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이제 범위를 좁혀 보면 우리 영주는 선비의 고장이라고 이미 사해만방(四海萬邦)에 표방한 바 있다. 영주에 사는 시민들은 더욱 말을 여유롭고 따뜻하며 품격있게 해야 할 것이다. 어느 누구든 선비 도시 영주에 가면 막말과독설을 귀를 씻고 들으려 해도 들을 수가 없게 된다면 영주에 가서 자녀를 키우며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고 영주의 앞날은 자연스럽게 열릴 것이다.
누차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지만 기왕 선비 도시라고 표방한 이상 모든 시민이 선비가 된다면 영주 발전은 여반장(如反掌)으로 성취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첫출발은 바로 말을 여유롭고 따뜻하며 품격있게 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