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경 (수필가)
사람은 누구나 행위에 대한 대가를 기대한다. 자신이 기울인 노력의 가치가 클수록 기댓값도 클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자신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부정당할 때, 혹은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껴질 때 분노와 맞닥뜨리게 된다.
감정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사람을 움직이는 무한의 힘을 갖고 있다. 분노가 조절되지 않아 엉뚱한 사람에게 화가 분출되는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다. 분노사회, 가속을 잡아줄 브레이크 없이는 위험한 주행을 멈출 방법이 없다. 분노를 다스릴 수 있는, 또는 멈추게 할 대안을 찾아야 할 때다.
지금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치밀어 오르는 화로 인해 스스로 통제할 힘을 잃어 가고 있다. 작은 일에 분개하며 사소한 손해조차 보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이유 없이 손해 볼 일은 아니지만, 타인에게 배려하는 것조차 부당하다고 생각해 자신의 행위 외는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참으라고 강요할 일은 아니다. 정서지능이 높은 사람은 타인의 감정을 잘 이해하기에 상대와의 관계가 원만하다. 어떤 문제에 부딪혀도 지혜롭게 해결할 줄 안다. 하지만 정서지능이 낮은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불안과 초조, 긴장이 늘 그의 곁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분노가 조절되지 않아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를 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 층간 소음으로,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만남을 거부한다고, 이유 없이 화가 나서, 음악 소리가 귀에 거슬려서, 홧김에, 끼어들기를 한다고, 순간적 화를 참지 못한 우발적 분노범죄자의 모습에서 시대의 슬픔을 읽는다.
결핍과 열등감이 클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반복되는 실패와 좌절은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증오를 낳곤 한다. 분노가 올라오면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보다 억지로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나서거나 평소 가깝게 지내는 이에게 속내를 털어내 위기를 넘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마저 쉬운 일은 아니다.
지난달, 대구 변호사 사무실 화재로 7명이 사망하고 40여 명이 다치는 참화가 발생했다. 방화범이 소송에서 패소하자 판결에 불만을 품고 상대측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불을 지른 분노의 표출이었다. 방화자 분노에 따른 방화이긴 하나, 죄 없는 선량한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인가. 아무 잘못 없이 한 개인의 분노로 인해 목숨을 잃어야 하는 기막힌 억울함을 어디에 하소연 할 수 있단 말인가.
감정은 내가 느끼는 것이다. 누가 대신 느껴주는 것이 아니다. 내 감정은 내가 조절해야지 감정이 나를 조절해서는 안 된다. 감정 컨트롤이 작동되지 않아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 앞에 사회 구성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우선 분노사회에 대한 본질 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분노가 조절되지 않아 화를 참지 못해 앞뒤 안 가리다 보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과 직면하게 된다. 분노로 인한 돌발적 행동이 불특정 다수를 피해자로 만들 수 있기에 이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과학 문명이 이룬 스마트 시대에 개인주의가 팽배해지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무한의 경쟁이 부추기는 부작용은 이타심을 멀리하게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더불어 함께의 가치가 중요한 때이다. 누군가를 비난한다는 건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상대가 갖고 있기 때문일 때가 있다. 타인을 인정할 용기가 과연 자신에게 존재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문명의 발달은 득과 실을 동시에 얻었다. 물질은 풍요로운데 정신적 허기와 결핍이 박탈감으로 이어져 사회를 병들게 한다. 자극적인 게임이 부추기는 행태와 성적과 외모에 대한 열등감, 과잉보호와 소통 부족 등 개인의 책임이라기보다 우리 사회가 짊어지고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이기도 하다.
감정에 매몰돼 욱하는 마음에 평생 지울 수 없는 후회와 맞닥뜨려선 안 된다. 평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그 속에서 위로와 긍정의 에너지를 얻어야 한다. 불평 대신 감사, 지적 대신 인정, 우울 대신 웃음, 받음 대신 베풂, 미움 대신 용서, 이 모든 걸 작은 것부터 실천해 볼 일이다. 분노를 잠재울 브레이크가 우리 사회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