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얘기지만 신문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신문이라는 거울은 팩트를 먹고 산다. 다시말해 신문을 보면 그 사회를 알 수 있다는 뜻이리라.
신문은 일종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신문도 사람의 일이라 늘 올곧을 수만은 없다. 정치 사회적으로 편향되거나 의도치 않게 그릇된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이로 인해 시민들로 부터 적지 않은 질타를 당하기도 한다.
영주시민신문이 정론을 표방하며 세상에 모습을 들어낸 지 이제 스물 한해다.
사람으로 치면 갓 성년을 지났고 실제로 그 나이의 청년처럼 혈기왕성하다. 그러나 아직은 경륜은 짧고 물리(物理)도 턱없이 부족하다. 하여 비전을 주는 신문까지는 거리가 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도 있다. 신문의 좁아진 입지다. 거기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다.
먼저 정보화 시대를 이끌어낸 인터넷이라는 괴물의 탄생이다. 이 매체는 신속성과 접근성, 편이성에 단연 우위를 점하면서 정보의 생산부터 가공, 유통 등 전 과정을 털도 뽑지 않고 집어 삼키고 있다.
특히 정보의 쌍방향성은 일방통행식 기존 뉴스 체계를 뿌리 체 흔들어 놓았다. 비단 본지만의 일은 아니지만 신문의 처지가 풍전등화라고 해도 엄살이 아니다. 다만 인터넷의 역기능도 만만치 않다. 특히 1인 미디어의 등장과 정보의 범람은 독자들을 혼란에 빠트린다. 이를테면 그 대표적인 총아인 이른바 가짜뉴스 Fake News라고 하는 양의 탈을 쓴 늑대 말이다. 신속하고 편리하더라도 팩트를 벗어난 정보가 있어야 할 곳은 오직 쓰레기통 속이다.
다행히 이와는 달리 티브이나 종이신문만이 가진 자산이 있다. 뉴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신뢰도와 정확도 말이다. 이런 독자의 믿음이 어쩌면 전통 미디어들을 지탱하는 버팀목일지도 모른다.
다른 하나는 신문에 대한 저조한 관심이다. 특히 본지와 같은 시골의 지역 신문은 더 말 할 나위도 없다. 지역 언론에 대한 시민의 거리두기는 지역 사회에 대한 무관심의 다른 표현이다.
이런 상황이다가 보니 넓게는 민주주의나 지방자치도 가끔은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읽히지 않는 신문은 그냥 종이쪽지에 불과하다.
세파世波 속에서 영주시민신문이 올해 스물한 돌을 맞았다.
발행 호수도 900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창간을 맞아 신문의 역할과 사명을 곱씹어 본다. 그러나 멋진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모쪼록 시민 여러분의 응원을 기대할 뿐이다.
늘 그랬듯이 매주 시민들을 찾아뵙겠다. 신문의 주어진 길을 묵묵히 가겠다.
바이블의 생각을 잠깐 빌리면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