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복 (소백산백년숲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나이 50이 넘은 사람은 공중에 높이 떠 정지해 노래하던 노고지리를 기억할 것이다. 노고지리는 종다리의 옛말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종다리는 대부분 ‘밭종다리’라는 종이다. 종다리는 4월 중순쯤 남쪽 월동지에서 날아와 밀이나 목화를 심은 밭이랑이나 밭두렁에 둥지를 지었다.

그 시절, 시골 아이들은 짬만 나면 밭두렁에 엎드려 올무 회초리를 살폈다. 밀밭을 뒤져 종다리 둥지를 찾으면, 들어가는 입구 방향에 나뭇가지를 꺾어 대문을 만들고 무명실로 올무를 치고 회초리를 꽂아 휘어진 끝에 묶어 사냥 준비를 끝냈다. 올무 회초리가 튕기기를 밭두렁에 엎드려 기다리면서 아이들은 설레며 여물어 갔었다.

중학교 갈 무렵이 되면 아이들은 종다리 따위는 잊어버리고 지내기 마련이었다. 안타깝게도 필자가 철이 들면서 종다리를 잊고 지내는 동안 종다리는 정말로 사라져 밭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종다리뿐만 아니었다. 저녁이면 강가를 새까맣게 뒤덮던 물새들도 볼 수 없게 되었다. 얕은 물가에 떼지어 다니던 송사리가 사라지고 이것들을 주로 먹던 작은 물새들이 떠났다. 이제는 새들이 돌아와도 앉아 쉴 돌 하나 남김없이 물속에 가라앉았다.

6.25동란 이후 미국으로부터 원조물자가 들어왔다. 주로 자국의 잉여농산물을 원조하였는데 이를 팔아서 군비를 확충하라는 것이 미국의 對韓 원조정책의 골자였다. 60년대에는 면화가 대량으로 들어왔다, 이들 값싼 원료를 바탕으로 섬유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밀가루와 분유 등 낙농 제품들이 그 대상이 되었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원조로 제공된 면화가 목화밭을 없앴다.

밀값이 싸지니 더는 밭에 밀을 심지 않게 되었다. 70년대 말에는 미국의 농산물 수입개방 압력이 거셌다. 쌀을 관세화로 지키기 위해 협상단은 미국 측의 명분을 세워준다며 수입개방요구대상 목록의 첫 번째였던 아몬드(Almond)를 수입하고 다른 품목을 지키겠다는 전략을 세워 협상했다. 그렇게 아몬드가 수입되며 제과업체들은 더는 국내산 땅콩을 쓰지 않게 되었다.

필자의 고향은 여주 남한강변 이다. 비옥한 퇴적층 고운 모래땅이 땅콩 농사에 최적이었다. 70년대, 전국 땅콩 생산량의 7할이 여주산이었다. 아몬드가 수입되자 여주의 땅콩 농사는 일시에 폐농 되었다. 그리고 땅콩을 심던 땅에 상업적으로 농사를 지은 것이 고구마다. 그 이전에 고구마는 대량 유통, 소비되는 작물이 아니었다. 땅콩 농사짓던 사람들이 고구마를 대량으로 심고, 저장시설을 갖추어 판매 가능 기간을 늘리면서 소비에 대응해 성공하였다.

연작으로 병이 퍼지자 새 땅을 찾아 나서면서 고구마 농사가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목화밭과 밀밭이 없어져 갈 곳 모르던 종다리는 농업이 기계화되고 농약과 멀칭 비닐이 사용되면서 영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 여주 남한강은 충주댐이 생기면서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여름에는 물이 차가워 들어갈 수 없는 강이 되었다. 그 많던 송사리며 옴개구리들이 수온 변화에 견디지 못하고 사라졌다. 먹을 것이 없어 물새들이 떠난 자리에 4대강 댐을 지어 물을 채웠다.

영주도 중병을 앓는 중이다. 영주댐 수몰로 사람들만 떠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생명들이 떠났다. 위장 전입해 알량한 투기로 이득을 챙긴 자들도 영주에서 빠져나갔다. 그들이 ‘영주는 청정할 것이라는 믿음’을 무참히 깨뜨리고 떠난 고인 물에 가마우지가 날아와 터를 잡았다.

변화는 크던, 작던 그것이 가져올 파급을 예상하는 것이 쉽지 않다. 변화의 영향에 처한 당사자가 힘이 있어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면 땅콩의 폐농을 극복하고 고구마 산업을 일군 사례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작고 여린 것들은 어찌할 방법이 없다. 몇 안 되는 사람들이 거대하고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필연적으로 작고 약한 것들을 희생시킨다.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변화를 주도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작고 약한 것들의 안부를 살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노고지리와 송사리와 옴개구리와 물새들을 떠나보내고 우리의 이웃과 가족과 후손들이 평안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지 시작하기 전에 물어보고 또 물어보자!

“노고지리는 잘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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