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시인)
말그물 통과하기
-송연숙
손잡이가 묵직한 검은 전화기 선에서
하얀 그물이 쏟아진다
거미줄처럼 맑고 투명해서
거미줄처럼 맑고 투명한 말(言)들이 쉽게 그물을 통과한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말들은
빠른 속도로 너에게 달려간다
두 팔을 벌리고 바람을 맞으며 걷기도 하고
이불속에서 핸드폰을 들고 속삭이기도 하고
침묵의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순간의 사진을 전송하기도 한다
꽃다발처럼
오랜 시간 우려낸 詩처럼
전송된 말들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터질 것 같아도
그물은 그물이어서 잠잠하게 그 말들을 놓아준다
간혹, 나비의 날개 같은 말 하나
그물에 걸려 허둥거리기도 한다
너의 잘못이 아니다
나의 잘못도 아니다
나비의 잘못은 더욱 아니다
몸부림칠수록 똘똘 감기고 마는 거미줄의 운명
사랑이 끝나면 바로 수컷을 잡아먹어야 하는
거미의 슬픔
허상임을 알아채는 순간
사라지는 그물
거미줄처럼 투명한 말들도 길을 잃는다
길을 잃은 말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가 된다
-말맛 보존의 법칙
생물계에서 먹이 사슬이 적용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 것처럼, 사람 관계에서는 말 사슬이 최고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꽃 같은 말이, 풍선 같은 말이 되기도 하고 “간혹, 나비의 날개 같은 말 하나/ 그물에 걸려 허둥거리”다 잃어버린 말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덧칠 같은 허세로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가” 되기 전에 말을 걸러주는 말그물을 몇 번 정도 통과하는 게 좋겠습니다. 물론 진실 되게, 향기롭게 말하는 게 “말그물 통과”보다 먼저겠지만요.
말에 대한 철학과 사유가 가득 들어앉은 좋은 시를 소개한 대신, 제 잡설은 줄이겠습니다. 진심은 입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