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시인)
흐르는 물도 닮아가는
-고바다
어머니 비가 그칠 건가 봐요
무지개가 다리 위로 건너와요
어머니 생애가 삐뚤거리는 일기장
당신과 나는 문법도 맞춤법도 다른 세상을 살고 있지만
전사轉寫된 그림 한 폭
당신이 매일 열고 닫았던 눈물을 읽습니다
몽당연필이 꾹꾹 누른 길 위에서
어린 시절을 떠나보낸 외삼촌 기다리던 어머니
칠십 년이 지난 아직도 한결같이 그곳을 서성이는 나어린 어머니
‘꾸메서라도 누나락고 한번 불으다오
많이 많이 보고 싶은 내 동생’
눅눅한 기억 속 뼈가 자랍니다
기억의 습지를 찌른 뼈 쏟아지는 어머니와 나는
손등과 손바닥처럼 다르지만 그리움으로 이어진 한 유전자
물기를 먹고 자란 기억들은 덜어내도 또 덜어내도 다시 차오르고
어머니 비가 그쳤어요 무지개가
건너오네요
-그리움을 접다
6월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갑니다. 6월이면 떠오르는 게 한국전쟁 아닐까요? 전쟁이 남긴 상처는 말로 하기조차 민망하지만 “어린 시절을 떠나보낸 외삼촌”을 놓지 못하고, “칠십 년이 지난 아직도 한결같이 그곳을 서성이는 나어린 어머니”의 슬픔도 정점에 있습니다.
해가 갈수록 더 선명해지는 게 그리움입니다. 삶의 꼬리가 조금밖에 남지 않은 부모님들은 더욱 그렇겠지요? 전쟁 때문이든, “삐뚤거리는 생애” 때문이든 아픈 수레바퀴를 내려놓는 건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어머니는 이미 미래의 그리움을 작정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울을 보다가 화들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거울 앞에 선 건 분명 나인데, 거울 속에서는 어머니가 보입니다. 유전자의 힘일까요, 시련의 힘일까요. 전쟁을 겪은 어머니도, 전쟁을 역사로만 배운 딸도 한 얼굴입니다. 어느새 “그리움으로 이어진 한 유전자”를 타고, 생생하게 건너올 무지개를 기다리는 것도 마치 데칼코마니 같습니다. 버짐처럼 마음이 박박 긁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