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경 (수필가)

초록 물결의 도미노 6월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 기울인 정성이 녹음으로 돌아오는 눈부신 계절을 맞았다. 푸르름이 지닌 효과는 젊고 패기 넘치는 청신함과 동시에 내일에 대한 꿈의 담보이기도 하다. 숲은 우리에게 희망이고 미래다. 오랜 시간, 숲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한 땀의 가치를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

자연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님에도 인간은 늘 주도권을 갖고 살았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서슴없이 벌채와 삭벌을 자행하며, 거대한 장비로 산림을 부수고 밀어내는 작업까지, 이 모든 걸 부끄럼 없이 이어왔다. 생태계 피라미드 최상위층 포식자로서 무분별하게 자연을 움켜쥐었다. 인간을 제외한 생태계의 입장에서 보면 용서치 못할 일이다. 숲을 무대로 살아가는 생명체가 터전을 이루던 보금자리를 내어주는 것도 모자라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공포의 시간과 맞서야 하는 불공정, 모두가 인간이 저지른 화(禍)의 기록이다.

나약한 생명체, 그들은 이 억울함을 어디에 하소연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속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다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모든 걸 내어줘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여린 생명체에겐 절망 끝에 선 사활이었을 텐데도 약자는 강자에 의해 선택권마저 가질 수 없었다. 자연은 말이 없다. 하지만 인간에게 보내는 메시지만은 굵고 분명하다.

숲의 주인은 인간만이 아닌 생태계 모두의 것이란 사실을 시시때때로 표하고 있다. 우주가 인간에게 자연을 허락하였던 건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공생하라는 당부다. 하지만 인간은 생태계에서 우위를 차지한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자신의 소유인 양 훼손과 분쟁을 일삼았다. 내 것이 아님에도 내 것처럼 주인행세를 했으니 피해는 고스란히 자연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모든 생태계 구성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울진과 삼척을 잇는 7번 국도를 지날 일이 있었다. 올봄 대형화재로 나라 전체를 공포의 도가니로 밀어 넣던 바로 그 도로다. 울진· 삼척 산불이 산림청에서 지금과 같은 체계적인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래 36년 만에 발생한 최대 규모라 한다. 역대 최장 10일 동안 213시간이라는 반갑지 않은 기록과 마주한 산불이었다. 산림 피해 면적은 1만 6301㏊로 이재민과 재산 피해, 정신적 피해까지 합할 경우 수식으로는 환산하기 어려운 엄청난 재난이었다.

능선과 능선으로 이어지던 자리는 화마가 휩쓴 처참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지금처럼 푸르름이 왕성한 계절이면 녹음 짙은 초원을 펼쳐 보이던 산림이었지만, 올해는 초록 대신 불길에 검게 탄 흔적만이 능선을 지키고 있었다. 숲이 터전이던 생명체는 죽음을 맞거나 탈출도 이루어졌겠지만, 여린 미물은 생존하던 그 자리에서 맥없이 최후를 맞기도 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조성된 숲이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내려앉는 걸 보면서 온 국민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수십 년에서 수백 년에 걸쳐 지켜온 숲을 화마에 빼앗기던 순간, 이를 지켜보던 주민들의 심정은 말해 무엇하랴. 숲의 처지에서 보면 자신이 가진 걸 전부를 잃음과 동시에 온몸은 만신창이가 된 격이다. 나무 한 그루 심어 거목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억울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우리 지역에는 국립공원 소백산이 있다. 산줄기마다 크고 작은 능선이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기에 수많은 발길을 불러 모은다. 영주의 자랑이면서 우리 손으로 지키고 보존해야 할 자산이다. 만약 소백산에 화재가 발생해 걷잡을 수 없는 불길로 번진다면 과연 우리의 힘으로 소백산을 지켜낼 수 있을지를 생각해본다. 첫째도 예방, 둘째도 예방밖에 답이 없다. 아무리 진화를 잘한다고 해도 예방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 모든 건 기본에 충실한 약속이다.

봄철이나 건조한 계절에는 입산을 통제하고 지정된 구역은 등산을 금하며 불법 취사와 야영도 삼가야 한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말이 있다면 바로 불조심이다. 자연 자원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다. 모든 생태계가 함께 누려야 할 권리다. 지키고 보존하는 것 또한 받은 만큼 돌려줄 의무다. 숲의 주인은 인간만이 아닌 생태계 모두의 것이라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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