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율 (동양대학교 교수)
사전투표에 이어 6월 1일 본투표를 마감하면서 지방선거가 이제 막을 내렸다. 당선인에게는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낙선한 사람들에게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먼저 당선인은 그동안 선거 기간 유권자들에게 약속했던 공약(公約)을 식언(食言)하지 말고 지켜주기를 바란다. 그야말로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생각하는 시민의 대표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언제나 초심을 지켜서 자기를 선택해준 유권자들에게 보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심판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니 축제라는 수사들이 반드시 실현되기를 바라면서 선거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적어본다.
선거란 말은 근래에 쓰인 말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된 말인 듯하다. 역사를 상고해보니 수(隋)나라 이후부터 이런 말이 나오고 「구당서(舊唐書)」에 「선거지(選擧志)」란 것이 있어서 선거란 말의 용례는 오래되었다고 하겠다. 물론 이때 사용된 선거란 말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선거와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선거란 말의 본래 어원은 선현거능(選賢擧能) 혹은 선거현능(選擧賢能)에서 볼 수 있듯이 어질면서 능력이 있는 사람을 가려서 거용(擧用)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즉, 군주주의 시대와 민주주의 시대에서 선발 방법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으나 현명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을 선거하는 것은 똑같다.
다시 말해서 방법이야 어찌됐든 선거의 대상이 되는 인물은 인격과 능력을 갖춘 사람, 유권자인 국민에게 진심으로 봉사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따라서 출마자는 출마에 앞서 본인에 대한 자기 검증이 필요하다. 이때 스스로 현저한 결격사유가 있다면 출마를 아예 포기해야 한다. 만약 이를 무시하고 출마를 한다면 그는 가장 먼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자신을 속인 사람이 남을 속이는 일은 여반장(如反掌)처럼 쉽게 할 것이다. 아울러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한 사람이 남을 떳떳하게 대할 리도 만무하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입후보자 상당수가 인격과 능력, 봉사심 측면에서 미달인 경우가 적지 않다. 문제는 함량 미달인 이런 후보자들이 유권자에게 표를 달라고 하니 유권자들로서는 속된 말로 미칠 지경이다. 고문 가운데 이런 고문이 없다. 이를테면 기본 이상이 되는 상품을 진열해놓고 사라고 해야지 기본도 훨씬 못 미치는 상품을 내놓고 고르라 하니 여간 답답하지 않은가? 정말이지 소비자 노릇, 즉 유권자 노릇하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연출되는 까닭은 선거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부족 탓이다. 어중이떠중이가 일신의 영달이나 세속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나서면서 문제가 비롯된다. 그들은 염치(廉恥)의 가치를 조금도 모른다.
「관자(管子)」의 「목민(牧民)」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국유사유(國有四維).일유절즉경(一維絶則傾).이유절즉위(二維絶則危).삼유절즉복(三維絶則覆).사유절즉멸(四維絶則滅).경가정야(傾可正也).위가안야(危可安也).복가기야(覆可起也).멸불가부조야(滅不可復錯也).하위사유(何謂四維).일왈예(一曰禮).이왈의(二曰義).삼왈염(三曰廉).사왈치(四曰恥).’라고.
즉, 나라에 네 개의 벼리가 있으니 한 벼리가 끊어지면 곧 기울고 두 벼리가 끊어지면 위태롭고 세 벼리가 끊어지면 엎어지고 네 벼리가 끊어지면 곧 멸망한다. 기운 것은 바로 잡을 수 있고 위태한 것은 편안하게 할 수 있으며 엎어진 것은 일으켜 세울 수가 있으나 멸망된 것은 다시 조치할 수가 없다. 무엇을 사유라 하는가? 첫째는 예요 둘째는 의요 셋째는 염이요 넷째는 치이다.
앞으로의 선거에서는 사유(四維)가 잘 지켜져서 깜냥이 되지 않는 사람은 제 스스로 출마나 입후보하지 않아서 유권자들이 기쁜 마음으로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래본다. 그럴 때 비로소 유권자는 투표의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선거에 참여할 것이고, 마침내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꽃이 활짝 피어 축제의 한마당이 펼쳐지리라 생각된다. 아쉽게도 현재로서는 그 날이 요원(遙遠)해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감상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