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

꽃밥

-강인순

밥 한번 먹자더니 하마 봄이 다 간다

큰길가 이팝나무 며칠째 밥해 놓았는데

뭐 그리 쏘다니는가 뭐 그리 꼭꼭 숨었나



다 식은 그릇 놓고 혼자서 떠는 궁상

그걸사 능청스레 낮달이 훔쳐보는데

한술 떠 창밖을 보니 오동꽃 등을 켰네
 

-밥 살게, 나와!

곳곳마다 화사한 꽃과 청량한 나무들로 가득한 계절입니다. 그중에서도 하얗게 매달린 이팝꽃이 매혹적인 숨결을 뿜어대며 눈길을 끕니다. 고봉으로 퍼담은 쌀밥 같은 꽃은 보릿고개의 배고픔을 달래던 그 슬픔 잊기도 전에, 또 후드득 지고 말겠지요?

도리인지 예의인지 어색함 때문인지,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을 사람들은 습관처럼 내뱉습니다. 해가 지고 바람 부는 일상 같은 그 말이 잠깐은 설렘을 주기도 하지만, 빈말에 밀린 겸상은 휴식에도 안타까운 등을 보이는 요즘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상상은 현실이 됩니다. 보세요! 가슴 속에 맴도는 아쉬움이 기억에서조차 사라질까 「꽃밥」으로 감정을 잡아둔 이 작품을요. 어설픈 조언과 값싼 충고도 없습니다. 기울지 않는 마음으로 그저 속살 같은, 햇살 같은 우리가 만나 소박한 밥과 정을 나누면 되겠지요.

“큰길가 이팝나무 며칠째 밥해 놓았는데/ 밥 한번 먹자더니 하마 봄이 다” 갑니다. 이 봄만은 적당하게 널린 핑계로 얼렁뚱땅 넘기지 않겠습니다. “다 식은 그릇 놓고 혼자서 떠는 궁상” 대신, 당신을 기다렸다며 당신이 보고 싶었다며 제가 먼저 밥 한번 꼭 사야겠습니다.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