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

장맛!

-이향숙

일광교회 동부지구 구역 장님
마을지킴이 부녀회 장님
어머니 노래교실반 장님
시골초등학교 동창회 장님
아들 학교 어머니회 장님
노인정 봉사회 장님
장님 노릇이라면 눈감고도 척척인 동대표인 그녀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첫날
총무 장부에서 드러난 영수증 없는 지출에 대해
얼굴 붉도록 핏대 세워 설레발치고 돌아가는 여자를 향해
어디가나 저런 사람 꼭 있지 쯧쯧! 니가 장맛을 알아?
장맛은 입맛이 아니라 손맛인 게야
여기저기 찔러 보지 않아도 단박에 알아차리는
항아리 장맛은 몰라도 사람 장맛은 아는 감칠맛 나는

 

-어떤 화양연화

“장님 노릇이라면 눈감고도 척척인” 그녀가 여기에도 등장하네요. 그것도 누구는 하나도 갖기 어려운 ‘장’ 자리를 일곱 개나 달고 말이에요. 당황스럽거나 안쓰럽거나 조금 코믹해서 호사가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딱 좋을 만큼이지만요. 짝다리 짚고 서 있어도 건방져 보이지는 않겠지요? 우쭐함과 과시를 넘어서는 눈치가 백단입니다. 유머와 위트가 넘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한방이 있습니다. 풍미 넘치는 결말인가요?

‘장맛’도 ‘장의 맛’도 많아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맛들도 봉사하는 마음이나 인내하는 마음 없이는 나오지 않으니까요. ‘장맛’이 달아 복이 있는 집처럼,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맛이니까요.

돈도, 가오도, 빽도 없는 사람들의 뒷모습에 숨겨 놓은 단면을 슬쩍 담았을 뿐인데 쓴웃음이 나고 쓴웃음이 나면서도 헛헛합니다. 그러나 익살 몇 조각을 넣어 더 서민적인 이 시는, 시의 맛이 독특해서 착 감겨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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