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남 (작가)

제주 4·3사건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제정된 법정 기념일인 ‘4·3희생자 추념일’을 앞두고 있다. 이 비극은 우리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희생자가 많은 사건으로 제주 주민 이만 오천 명에서 삼만여 명의 희생이 기록된 뼈아픈 역사이다.

되풀이해서는 안 될 불행한 역사,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암울한 사건은 연일 터지고 있어 뉴스를 지켜보는 마음이 혼란스럽다.

지금의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과 더불어 기후변화에 따른 재난으로 전 세계적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위험천만한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더욱이 기후변화는 잦은 산불과 홍수, 폭우와 폭염, 해수면 상승과 생물종 감소 등을 이야기하며 지구촌 곳곳의 생태환경을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있어 팬데믹 보다 더 큰 재앙이 될 듯하다.

인간의 대응에 따라 상황은 달라지겠지만, 대응에 필요한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전 지구적 대응이 시급하다. 더 늦지 않게 모두의 평화를 위해서 힘을 하나로 모으고 마음을 모아야 할 때이다.

오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불황, 우크라이나 전쟁, 울진, 강원의 대형 산불 발발 등 이런 재앙은 시간이 지나도 오래도록 상처로 각인될 것이다. 그러나 비극은 반복되고 있다. 인류사는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전쟁을, 경제적·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삼아 왔다. 강대국이 전쟁을 통해서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을 조절하는 ‘필요악’ 역할을 자초하고 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불행의 그림자는 결국 인간의 이기심과 끝없는 욕심이 자초한 것이다. 대다수 비극의 원인은 경제적인 이유, 즉 ‘밥그릇’ 싸움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적자생존의 자연법칙이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강자의 약자에 대한 지배욕은 이기심을 앞세운 의도적인 행위이고, 또한 인간의 개입으로 멈출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은 분란이 아닌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협력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에게 아픔으로 각인된 비극의 역사가 그렇듯, 오늘의 러시아 태도는 전 세계인의 안녕을 염원하는 마음을 배반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난민들의 행렬과 수많은 죽음은, 며칠 후 다가올 4·3희생자들 모습과 오버랩되어 가슴을 짓누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꿈꿔야 함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각각의 경험을 경유하며 우리에게 수신되는 공통의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연결된 존재로서의 ‘실감’은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서 우리를 능동적으로 일깨운 감각의 하나일 것이다.

울진, 강원 산불이 발생했을 때, 전국적으로 힘을 모은 사람들과 영주 시민단체나 개인의 적극적인 도움의 손길은, 지켜보는 이들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들었다. 능동적 참여가 현실의 주요한 문제들을 모두 해결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공적 삶에 참여하는 선언적인 모습이었다. 봉사자들의 선한 영향력은 그 자체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부합되는 결과는 전 미래적인 것으로 그려져 눈길을 끌었다. 이들의 행보는 ‘함께’라는 가치와 의미를 되새겨준 모습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지속적으로 함께 평화의 깃발을 올려야 한다.

흔히 희망을 담보로 미래를 이야기할 때 ‘우리 함께’를 강조해 왔다. 슬픔이든 기쁨이든 함께 나누면 그 의미는 배가 된다. 과거와 현재, 사람과 사람은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실감은 우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일깨운 소명일 것이다. 이를 통해서 ‘상호 관심’의 관계성에 대한 지향이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제주 4·3사건 희생자 유가족의 아픔은 지속되고 있을 것이므로 비극이 남긴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매년 4월 3일 행정안전부 주관으로 치렀던 제주 4·3사건 희생자 위령제가 올해는 메타버스 가상 추모공간이 구축되어 진행될 계획이라고 한다. 올해 74주년이 되는 제주 4·3항쟁 추모식에 잠시나마 머리를 숙이고 숙연한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시간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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