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털터리 밑바닥 생활, ‘시장에 나가보니 돈이 보이더라’

무지개장학회 제1차이사회(2011.10.16)
무지개장학회 제1차이사회(2011.10.16)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페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첫 사업 실패 후 남의집 허드렛일
연매출 200억원대 회사로 성장시켜

함께 고생한 부인에게 회사 경영 맡기고
현재 고문헌과 골동품 수집으로 취미생활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직전인 2020년 3월 2일 고향 영주의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성금으로 선뜻 500만원을 내 놓은 출향인이 있다.

바로 ㈜일산유통 박찬효 대표이다. 성금 기부와 관련해 박 대표는 “태어나고 자란 고향 영주에 도움이 되고 하루빨리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탁했다”고 말했다.

한중 수교 전 조선족자치구 출장을 다니면서 가난으로 학업을 잇지 못하는 동포를 본 박 대표는 자신의 어린 시절 가난을 생각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을 포기하는 동포를 하나라도 더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에 장학금을 지급했다.

처음엔 혼자 하던 장학사업을 10여년 전 규모를 키워 ‘무지개장학회’를 조직해 지금까지 회장으로 있다. 무지개장학회는 현재 대학생 4명을 포함 13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는 “장학금을 받아 공부를 한 후 사회에 진출, 장학사업에 참여한 사람도 셋이나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어 기쁘다”고 했다. 박대표는 모교 고등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박 대표는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가 고향으로 이산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이 진학하는 영주중학교를 나와 영주제일고등학교 중퇴 후 서울로 이주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 과정은 검정고시로 마쳤다. 영주에는 현재 누나가 거주하고 있다. 지인들에게 애향심이 깊다는 평을 듣고 있다.

초등학교 은사님을 모시고
초등학교 은사님을 모시고

고향 마을 소개를 부탁합니다.

이산면 석포리 동산골이 고향 마을입니다. 동산골은 번계마을 북쪽에 있으며 당시 열두 집 가량이 살았습니다. 지금은 네 집이 남아 있는 걸로 압니다. 조부가 계셨을 때에는 형편이 좋았습니다. 조부가 천운정에 자주 가셨는지라 따라 가서 놀기도 했습니다.

집안이 원래 순흥 덕현에 살았는데 고조부가 동산골에 정착해 입향조가 되셨습니다. 고조부를 비롯 산소들이 고향에 그대로 있습니다. 살던 집은 비어 있다가 너무 낡아 철거하였습니다. 철거하고 나니 허전하기도 합니다. 지난 해 이산서원 복설 고유제에 참석하며 동생이 다녔던 이산동부초등학교도 둘러보았습니다. 폐교가 되어 안타깝습니다.

무지개장학회 제9차 회의(2019.8.18)
무지개장학회 제9차 회의(2019.8.18)

회사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일산유통을 2005년에 창업했습니다. ㈜일산유통의 지난 해 매출 200억이었습니다. 주로 롯데마트 등 대형 마트에 납품합니다. 취급 상품은 채소입니다. 채소 중에서도 오이, 호박, 고구마 등 과채류(열매 달리 채소)입니다. ㈜일산유통과 별개로 예다움영농조합법인이 있습니다.

대전 이북 롯데마트 과채류 납품왕 3사 중 하나입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강서지사가 가장 우수한 거래실적을 기록한 강서시장 중도매인을 선정할 때 판매왕으로 선정되는 등 회사의 실적 향상과 함께 신용도도 올라갔습니다. 품질 좋은 고구마를 납품하기 위해 영주 안정 고구마 생산지를 찾기도 하는 등 고향의 농산물과 연결하려고 했습니다.

회사는 요즘 아내가 경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성경영인으로 활동하는 아내를 보면 제가 못 보던 면을 발견하며 놀라기도 합니다.

수집한 다리미 일부(현재 인사동 갤러리담에서 전시중)
수집한 다리미 일부(현재 인사동 갤러리담에서 전시중)

회사를 창립하기 전엔 어떤 일을 하셨는지요?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후 기아기연에 입사하였습니다. 기아기연은 ‘기아혼다’ 브랜드의 오토바이 제조회사였습니다. 기아기연에서 지점장으로 재직하다 퇴사하였습니다. 80년대 중화학공업 통폐합 시 회사가 대림으로 넘어갈 때 입사 동기들과 같이 퇴사하였습니다. 퇴사 후 퇴사 동기 몇과 함께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사업이 실패로 끝났습니다. 사업실패로 빈털터리가 됐습니다. 하는 일 없고 할 일도 없었지만 답답해 가락동 시장에 무작정 나가 보았습니다. 시장에 가서 보니 신용만 있으면 돈을 버는 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시장에도 끈이 돼 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무안 출신으로 당시 양파 거래의 큰손이던 장회장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 집의 허드렛일을 돕기도 하면서 그 분의 지원으로 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남의 집 담벼락 아래에서 물건을 팔았습니다. 장사를 하며 남의 집에 가서 일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차츰 신용거래를 할 정도가 되면서 사업을 키웠습니다. 저만 시장에 나간 게 아니었습니다. 아내도 같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고향 영주에서 보낸 학창시절의 추억을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산초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집에서 학교인 이산초등학교까지는 십리길이었습니다. 외나무다리를 걸어서 내성천을 건넜습니다. 당시 외나무다리는 폭이 매우 좁았습니다. 장마철이 되면 상판을 미리 걷거나 떠내려 가 학교에 갈 수 없었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내성천 건너편에서 손짓발짓과 고함으로 확인을 하며 출석으로 인정하기도 하였습니다. 등하교를 하다 배가 고파 남의 집 무를 뽑아 먹기도 했습니다.

영주중학교 진학 후 9km를 걸어서 등하교를 했습니다. 달을 보고 집을 나섰다 달을 보며 귀가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가 돼서야 집 근처를 다니는 시내버스가 생겼습니다. 영주제일고에 진학해서는 친구랑 자취를 했습니다. 집에 들릴 때마다 쌀보리 한 되를 갖고 가서 끼니를 해결했습니다. 밥 짓기가 싫어 떡으로 만들어 먹기도 했습니다.

영주 중앙통에서 친구랑 등록금으로 찐빵을 사먹고 혼날까 무서워 태백으로 도망갔다가 잡혀 오기도 했습니다. 몇 년 전 초등학교 3학년 시절 담임이던 이옥자 선생님을 영주축협 한우프라자 청계산역점에 모셨습니다. 이선생님은 재경영주향우회 조직국장인 이강기 사장의 고모입니다. 현재 요양원에 계시다니 짠합니다.

기업을 경영하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경험을 소개 부탁드립니다.

시장에서 장사를 한 후 회사 경영에 결정적인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시장에서 장사 시작 1년 후 연간 1억을 저축할 수 있었습니다. IMF시기에 큰 부도를 맞기도 했습니다. 2억원 정도의 부도였는데 채무자의 형편이 워낙 어려워 보여 아내와 상의해 채권 회수를 포기했습니다.

채무자가 그 뒤 찾아와 은혜를 갚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토큰이 없어 먼 길을 걸어 다녔던 기억이 있는지라 그에게 재기를 당부하며 당시 100만원을 손에 쥐어 줬습니다. 그 사람이 그 뒤 연락이 없어 인간적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당시 사업이 잘 되는지라 회사 경영에 바빴고 큰 타격은 아니었습니다.

즐거웠던 추억을 하나 들면 무엇인지요?

장사를 시작하고 아내와 함께 새벽에 나가 밤늦게 집에 들어가는지라 아이를 제대로 돌볼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학생들을 제대로 돌보아 주는 보딩스쿨이 있는 호주 학교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딸이 대학 입학 후 막내 처제와 처제의 아이들이 호주로 합류해 생활했습니다. 딸은 호주에서 10년 유학 생활을 하고 석사학위를 취득 후 귀국했습니다. 직접 돌보지 못했음에도 무탈하게 성장한 딸에게 고맙기도 합니다.

친구 등 출향인들과 대화를 많이 하실 텐데 출향인들이 귀향하는데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일지요?

잘 모르기는 합니다만... 출향인들 대부분 출향한지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귀향하면 도시에서 살던 만큼 살기 힘듭니다. 도시 생활의 편리함을 떨치고 고향에 정착한 금계종손(필자) 같은 이도 있지만 이런 분들은 귀향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어서라 봅니다. 대부분의 출향인들에게 그런 의무감이 주어져 있지 않다고 봅니다. 또 배우자 설득이 힘들기도 합니다.

장욱현시장님이 관심을 갖고 애향인의 귀향을 추진하시지만 현실적 한계가 있습니다. 어쩌면 귀향을 촉진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 것도 같은데 여러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모으고 사례를 살펴 보아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출향인들 귀향 촉진을 위한 사업을 할 때, 공무원들은 선례를 찾기 보다 새로운 방법으로 출향인들이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일을 도모함이 좋겠습니다. 출향인들에게 예산이 추가로 들어가야 한다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회사 경영에도 손을 떼셨다니 요즘 가장 관심 있는 일은 무엇인지요?

그 동안 기회날 때 마다 옛 어른들이 남긴 걸 모았습니다. 그 흔적을 토대로 옛 어른들의 삶에 대해 살피고 있습니다. 최근에 한시를 배우기 위해 서울 낙원동 현암서당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것도 그 일환입니다.

조부가 쓰신 글을 모으고 소고 할배(소고 박승임)의 전적을 모았습니다. 반남 박씨 옛 어른들의 전적 문집도 수집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서예가인 소우 강벽원 등 유명 서예대가의 글씨도 몇 점 갖고 있습니다.

이태리 출장 시 본 다양한 재봉틀을 포함해 다리미 200점도 수집했습니다. 중국으로 팔리려는 걸 제가 구입했습니다. 현재 서울 인사동 ‘갤러리 담’에는 저의 수집품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영주세계풍기인삼엑스포가 올해 개최됩니다. 꼭 성공하여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저도 영주세계풍기인삼엑스포가 성공해야 한다고 봅니다. 엑스포는 세계인에게 알리는 행사입니다. 엑스포 후에는 세계인들이 영주를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기존의 방법과는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저도 버스 1대를 대절해 사람들과 함께 엑스포에 참여할 계획으로 있습니다. 영주 향우회 회원들도 영주세계풍기인삼엑스포에 관심이 많으며 다들 엑스포의 성공을 바라고 있습니다.

황재천(프리랜서) 기자 / 오공환 기자


박찬효 ㈜일산유통 대표 프로필

- 이산초등학교, 영주중학교 졸업
- 영주제일고 3학년 중퇴, 대입검정고시
- 방송통신대
- (전) 기아기연 지점장
- (현) ㈜일산유통 대표
- (현) 무지개장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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