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경 (수필가)
어둠이 내리면서 영주 시내 주요 거리는 퇴근하는 차들로 어수선하다. 차량 불빛이 거리를 밝히는가 싶더니 러시아워가 끝나면서 다시 한산해지는 모습이다. 늦지 않은 시간, 한창 활기를 띠어야 할 중심가지만 뜻밖에도 인적이 뜸해지고 있다. 이런 모습이 하루 이틀도 아니건만 갈수록 그 시간이 앞당겨지는 것 같아 토박이 시민으로서 염려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상가의 공실도 눈에 띄게 늘어나는 추세다. 북적거려야 할 상가는 한산하다 못해 쓸쓸함마저 인다. 코로나 확산세로 지금은 주춤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은 시간대 신도시 택지와는 사뭇 대조된 모습이다. 모든 상권의 집결지였던 원도심이기에 아쉬움이 더 큰지도 모른다.
어느 지역이든 원도심은 지역민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다. 역사와 문화 속, 삶 깊숙이 뿌리내린 지역민의 정서가 녹아있고 유년을 거쳐 성장기를 이어오는 동안 생의 희로애락이 함께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추억을 소환하기엔 더없이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출향민이 영주에 오면 시내 중심가를 거닐며 시간을 더듬어 보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하곤 한다. 자신에게 추억된 장소가 변함없이 건재할 때 고향에 대한 만족은 배가 될 터, 언제나 그래왔듯 있어왔던 것의 익숙함은 늘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했다. 하지만 지역 문화의 판이 바뀌면서 도심에 깃든 추억은 이제 기억의 한 귀퉁이에 머문 채 시곗바늘처럼 현재의 흐름만 좇아갈 뿐이다.
한때 상가가 밀집된 영주의 원도심은 붐비는 인파 속에 사람 사는 맛이 끊이질 않았다. 상인과 고객 사이엔 흥정이 따라다녔으며 다음으로 따라붙는 것이 후한 덤이었다. 구매자도 판매자도 후한 인심 덕에 마음마저 넉넉한 날이었다. 필자가 세상에 눈을 뜨면서 수북하다는 언어를 몸소 체험한 곳도 바로 원도심의 재래시장에서였다.
사고파는 거래 속에 온기가 넘칠 때면 마음은 부자가 된 듯 꽉 차올랐다. 그게 바로 정이었다. 스마트 시대에 온라인 상거래가 활성화되긴 했어도 정까지 거래할 수는 없지 않은가. 모든 게 넉넉하지 않던 시절에는 정 하나만으로도 감사할 줄 알던 날이었다. 그것은 사람살이에 가치를 둔 영주의 모습이기도 했다.
원도심을 이용하던 이들이 먹거리, 볼거리, 즐길거리를 택지로 이동하면서 안 그래도 줄어들던 발걸음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뜸해지고 있다. 영주의 원도심을 부활하기 위해 여러 단체에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작 시민들이 피부로 느끼기엔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먹거리와 볼거리, 즐길거리가 시민들께 맞춤형으로 채워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기대에 부응치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움 또한 크다. 신도시라는 메리트를 차치하더라도 시내 중심가의 쾌적한 환경변화와 주차문제 등, 원도심과 택지 사이에 벌어진 간격을 좁힐 방법을 여러 각도에서 모색하고 있지만, 해결책 또한 쉽지 않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제안해보고 싶다. 우리 지역의 농특산물(한우, 인삼, 사과, 부석태, 복숭아, 포도, 생강 등)을 활용한 ‘음식문화거리’를 원도심 안에 밀집 조성해 영주를 경험할 기회를 마련하는 거다.
유명무실한 음식문화거리가 아닌 영주 농특산물에 이야기를 입혀 관광 인프라를 형성하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 침체한 지역 경기를 살리는 방법을 모색한다면 좀 더 기대에 찬 내일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소백산이 뿜어내는 맑은 물과 공기를 마시고 자란 농특산물이야말로 힐링 영주의 가치를 세우는 일 아니겠는가.
영주의 내일을 생각한다. 교통의 르네상스 시대도, 인구 16만 시대도, 이제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바뀐 지금 옛 명성만을 좇아 헤맬 수는 없을 터, 원도심이 거듭나지 않고선 영주의 변화를 꿈꿀 수 없다.
시민의 만족이 담보된 영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영주, 원도심 부활이 바람으로만 그치지 않고 민과 관, 상인이 마음을 합해 설렘이 있는 영주로 거듭나길 두 손 모아 빌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