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복 (소백산백년숲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 必偃, 군자지덕풍 소인지덕초 초상지풍 필언 ;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이니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공자(公子)가 ’다스리는 자(君子)가 모범을 보이면 백성(小人)은 따르게 마련‘이라는 뜻으로 한 말이다.

상고시대에는 힘 있는 자가 신을 빙자해 세상을 다스렸다. 사람들은 신화를 믿고 신과 함께 살았다. 나라는 하늘에 의지하고 천명(天命)으로 다스렸다. 역사가 천명을 극복하고 철학을 시작한 것은 대략 2,500년 전이다.

천명을 주관해온 은(殷)나라를 무너뜨리고 주(周)나라를 세운 화하족(華夏族)은 역천명(逆天命)의 모순에 처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덕(德)의 개념을 만들었다. 인간이 덕(德)에 따라 천명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노자(老子)와 공자(公子), 시타르타가 동시대에 태어난 것은 인간이 천명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게 하려는 섭리가 작용한 것이리라.

생각은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호기심은 대상을 진지하게 자세히 관찰할 때만 일어난다.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하는 것은 믿음에서 벗어나 주체적 자아(自我)로 독립(獨立)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질문은 인격(人格)에 속한다. 질문함으로써 인간은 보이지 않는 모르는 것을 사유해 개념화하고 기준을 세워 문명을 이룩했다. 생각한다는 것은 아는 것, 익숙하고 편안한 곳으로부터 출발하여 모르는 가물가물하고 어둡고 낯선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질문을 통해서만 인간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규범과 사상에 구속됨 없이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질문은 경계 밖을 향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질문은 공적(公的)이며 윤리적(倫理的)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Transparency International)는 매년 부패인식지수를 조사해 발표하는 NGO 단체다. 부패인식지수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2017년에 100점 만점에 53점으로 51위였다. 이후 개선되기 시작하여 2021년에는 62점으로 31위에 위치했다.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은 국제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어떤 학자는 한국의 부패유형을 엘리트 카르텔 형으로 분류한다. 배운자들이 무리를 지어 해쳐먹는 유형의 부패가 만연해 있다는 얘기다.

법원과 검찰의 고위직에 있던 자가 변호사 개업하면 수임료가 부르는 게 값이 된다. 직(職)에서 쌓은 친분이나 권위로 수사와 재판을 거래한다. 명백하게 현관과 전관의 협작(挾作)이고 중대한 범죄행위이며 헌법을 무력화시키는 국기문란 행위다. 그런데도 “전관예우(前官禮遇)”라는 해괴한 언어조작을 통해 죄의식을 마비시킨다. 엘리트 카르텔은 지연, 학연, 이권으로 연결되어 사익을 위해 법체계를 무력화시킨다. 어디 법조계뿐인가. 주권자 국민이 통제할 장치도 없는, 청산해야 할 식민지 시대의 괴물이 한둘이 아니다.

질문이 허용되지 않는, 정해진 답을 푸는 것으로 경쟁해 뽑힌 자들이 현재 한국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함석헌 평화연구소」의 황보윤식 선생은 “부도덕한 주류”라는 말로 그들이 만들어내는 폐해를 개념화했다. 외부의 규범에 의존하는 수동적인 인간은 사적 이익 앞에서 허약하게 무너진다. 그러나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세계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자발성을 지닌 인격은 그렇게 쉽게 자신의 존엄을 훼손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구성원 각자가 자유로운 주체로 사유(思惟)할 수 있을 때만 힘을 발휘한다. 히틀러와 나치가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합법적인 권력이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독일인들이 나치의 만행에 대해 끊임없이 사죄하는 것은 히틀러 때문이 아니다.

히틀러가 어떤 자인지 알면서도 투표한 자신들의 조상들 때문이다. 아무리 제도와 절차가 완비된 상태라 해도 구성원들이 독립적인 주체로서 사유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주입된 주의나 기준에 따라 행동한다면 이는 자신의 존엄을 훼손하는 것이며 사회를 위험에 빠트리는 일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다. 생각하는 독자 앞에 근거를 제시해 비판하지 않고 말을 비틀어 호도하는 거짓 언론이 존재할 수 없다. 생각하는 유권자 앞에 공허한 약속으로 표를 구걸하는 정치 모리배가 설 자리가 어디 있겠는가.

장자(莊子) 천도(天道) 편에 윤편(輪扁)의 이야기가 나온다. “성현(聖賢)의 글도 조백(糟魄;찌꺼기)일 뿐”이라는 것이 골자다. ‘술 찌꺼기를 먹고서 술을 빚고 마신다는 착각에 빠지지 말라’는 비유다. ”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 必偃“이라고 한 공자(公子)의 말씀도 분명 『조백(糟魄;찌꺼기)』일 뿐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는 군자도 소인도 아니고,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살아서 유연하게 흔들리는 풀이요, “스스로 바람”인 존엄(尊嚴)한 존재들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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