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남 (작가)

2022년 1월, 새해의 시작인가 싶었는데 어느새 한 달이 다 가고 있다. 1월은 새로운 기획과 희망찬 출발을 다짐하며 시도되는 것들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발 빠른 사람은 계획에 맞추어 이미 한해의 첫발을 내디뎠을 것이고, 아직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있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새로움’이란 것이 ‘없는 것을 창조하는 새것의 존재’로 표상해왔던 새로운 이미지의 반복은 아닐까? 새로운 출발이라는 명목 아래 매번 베껴 쓰기 식 중복되는 것들이 많다.

‘새’ 자를 붙여야 할 것만 같아서, 혹은 남들이 하니까 따라해 보지만 사실 새로운 발견을 하기란 쉽지 않다. 비일비재한 것들을 재생산하는 범주를 이제는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어디서 본 듯한 것들을 보여주기 식으로 만들어놓고 새로운 것이라고 포장하기에 급급한 것은 아닌지.

이미 있는 것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일과, 있는 것을 잘 활용하여 재탄생시켜 숨을 불어넣는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문화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오래도록 지역에 숨을 쉬고 있는 문화를 잘 보존하고 되살리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굳이 있는 것을 사장시키고 자꾸 새로운 것만 찾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되짚어 봐야 한다.

영주시민이라면 삼판서 고택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미 전국적으로도 명성을 얻은 관광지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고택 주변에 새롭게 추가되고 보완된 것들이 있다. ‘포토 존, 달’ 조형물은 삼판서 고택과 어떤 개연성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삼판서 고택 하면 떠오르는 인물 중 한 명은 조선 건국공신 ‘정도전’ 일 것이다. 이곳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14년 방영된 ‘정도전’이라는 드라마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은 정도전 생가하면 삼판서 고택을 떠올릴 것이다. 지금의 장소는 이전하여 복원된 것이다.

영주가 정도전의 고향이지만 태어난 장소를 알리는 표지판 하나 없다. ‘터’는 뿌리고 정신이다. 삼판서 고택을 생각하면 뭔가 알맹이가 빠진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역사적으로 오래 기억되고 본받아야 할 우리 지역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실제로 ‘태어난 곳을 찾아 알리는 노력을 더 미뤄서는 안 될 것이다.

마땅히 지켜야 할 영주의 문화인 셈인데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무척이나 아쉽다. 표지판을 시작으로 얼마든지 연계 관광 마케팅 효과를 노려볼 수도 있지 않을까?

구성공원 아래 ‘봉송대’를 지나 모퉁이를 돌면 왼쪽 골목 어귀 아카데미 모텔 자리가 정도전이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1961년 ‘영주 대홍수’ 전까지는 이곳에 생가가 있었다고 한다.

영주시는 2022년 신년화두로 자아작고(自我作古)를 선정했다. ‘옛것에 얽매이지 않고 나부터 새로운 선례를 만든다.’의 의미가 얼마나 잘 활용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영주시내 분수대 소나무 아래는 ‘수해 복원 기념비’가 있다. 이 표지석의 높이가 ‘영주 대홍수’ 때 수심의 높이라고 한다. 표지석을 세워둔 이유는 우리 지역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하나의 상징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삼판서 고택을 찾아오는 많은 관광객들 중에 누군가는 정도전의 생가도 궁금해 하지 않을까? 말초적인 표지판 하나일지는 몰라도 ‘있음’과 ‘없음’의 차이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안의 차별로 어딘가에 재능이나 흔적을 지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살펴볼 일이다.

한 사람의 생애를 기리기 위해서는 작은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새로운 문화만 고집할 게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잘 보존하는 일 또한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일 테다. 그러나 아직 꺾이지 않은 희망은 있을 터, 오늘 눌러쓴 바람이 외진 영주 문화의 귀퉁이에 닿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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