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경 (수필가)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해맞이 행사가 취소되었음에도 철탄산, 연화산, 뚜께바위, 비봉산, 박봉산, 용암산 등지에서는 시민들이 각자 마음에 소원을 담아 일출을 맞이했다. 올해의 시작도 여전히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어지고 있다. 곧 끝날 것 같은 거리두기는 바람으로만 남은 채 또 이렇게 새해를 맞게 되었다.

좀체 수그러들 줄 모르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소소한 행복마저 앗아갔다. 올해는 세 번째로 맞는 코로나 졸업식이다. 아들이 다니는 D고교로부터 졸업식장에 학부모 참석이 어렵다는 안내 문자를 받았다. 졸업 풍경이 바뀌면서 전국적으로 비대면 온라인이나 드라이브스루와 워킹스루 등 지역 내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노력이 총출동되고 있다. 졸업은 끝이면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2년에 걸쳐 대면수업과 비대면 수업을 수시로 병행하였기에 졸업만큼은 축제 분위기 속에서 맞이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은 풋풋하고 패기 넘치는 청년의 값진 미소를 마스크 안에 담은 채 학부모 없는 졸업식에 참여해야만 했다. 건강한 거리두기를 위한 일이라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거리두기는 물리적인 장치만이 아닌 사람과 사람, 자연과 자연 사이에서도 필요하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있듯 무슨 일이든 밀착되었을 땐 보이지 않던 것이 조금 물러난 위치에서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면 놓쳐버린 현상을 좀 더 명확히 볼 수 있다. 자신의 모습도, 상대의 모습도 시간과 공간이라는 틈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면 그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까지도 감지할 수 있게 된다.

다 이해할 거라 믿으며 확신했던 일이 어긋남으로 돌아올 때가 있다. 가깝다는 이유로 쉽게 대하다 보면 상대의 가슴에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게 된다. 세상에는 쉬운 관계란 있을 수 없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대를 더 예우하며 존중해야 한다. 말에서, 행동에서 격 없이 대하다 보면 경계가 허물어져 긴장감 없는 관계가 이어지다가 끝내는 소원한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친한 사이기에 모든 걸 이해할 거란 생각은 버려야 한다.

세상살이에서 경계 없이 지내다 사소한 일에 부딪혀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한다. 지나친 밀착이 오히려 관계를 그릇되게 해 상처로 남는 일은 없어야 한다. 틈의 부재에 따른 밀착이 시야를 어둡게 해 객관화로부터 멀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본마음으로 대하면 사람을 얻을 터, 경쟁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지지 않아야 승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질 줄 아는 용기야말로 진정한 승자의 모습 아니겠는가.

우리의 삶 곳곳에도 건강한 거리두기는 필요하다. 과실수 열매를 적과 하는 일도, 정돈된 논밭에 모종을 띄엄띄엄 심는 일도, 알찬 결실을 수확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다. 서로 간 벌어진 간격으로 일조량과 바람의 양을 조절해 건실한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건 건강한 거리두기 덕분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영역 안에서 몸집을 넓혀 나가야 함에도 간격이 좁아 서로 부딪혀 엉키고 뒤틀리다 서로에게 상처만 남는 일이 되어선 안 된다. 거리두기는 햇살과 바람이 통하는 길이기도 하다. 간격을 둠으로써 알차고 튼실한 열매를 얻는 것처럼 서로를 향해 비워 둔 마음자리에 이해와 배려를 얹어 원활한 소통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새해 소망에 담는다.

세상을 향해 첫발을 딛는 고3 졸업생, 팬데믹을 잘 이겨내고 있지만 앞으로 어떤 걸림돌이 그들 앞에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넘어져 일어서는데 회복할 수 있는 거리, 장애물이 스쳐도 막아낼 수 있는 거리, 세상 부딪힘에 당당히 맞설 건강한 거리, 젊은 세대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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