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
손톱
-정수자
마음이 시끄럽게 뾰족뾰족 돋는 날은
손톱을 세워 본다 세상을 다 후빌 듯
은밀히 자란 욕망들 붉게붉게 키워본다
파르르 날 선 순간, 웃으며 구겨넣은
적의가 지금 모두 손톱 밑에 웅크렸다
비로소 때를 만난 듯 단단히 반짝인다
하지만 너무 많은 질긴 벽들 앞에
피가 고인 듯 손끝만 무거운 날
세상을 돌아앉아서
나를 오래 자른다
-조바심과 자존심 사이
무엇이 시인의 마음을 거슬렀을까요? 많이 고달픈 날이었나 봅니다. 불쑥 터져 버린 일들 혹은, 꼬일 대로 꼬인 관계 때문일까요? 지나면 이 모든 일도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지만, 그 순간만큼은 하늘을 찌를듯한 화가 폭발하기도 합니다.
손톱을 세우면 손톱에도 송곳 같은 상처가 생깁니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죠. 그러나 반전이 시작됩니다. “세상을 돌아앉아서 나를 오래 자른다”에서 이미 날카로움은 무장해제 되었으니까요. “질긴 벽들”도 무너집니다. ‘네일아트’라는 요즘 유행하는 손톱 미용에 집중해 봅니다.
상상도 좋고, 실제로 해보는 것도 좋겠지요. 날 선 손톱을 자르는 대신, 통증을 지운 뒤 새살 심듯 꾸며봅니다. 허옇게 허기졌던 손톱에 꽃도 피고 별도 뜹니다. 요동쳤던 심기가 잔잔해집니다.
혹시 눈치채셨나요? 이 작품은 언뜻 시처럼 보이지만 정형성을 갖춘 세 수로 된 시조입니다. 시조라면 고루하고 낡은 산물로 여기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반면에 짧지만 울림이 있는 시조의 매력에 빠진 문학인들도 많습니다. 이처럼 시를 읽을 때 의미는 물론, 형태까지 들여다보는 혜안을 키우다 보면 시가 점점 재미있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