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복 (소백산백년숲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부석사의 가을엔 단풍이 아름답다. 풍기에서 순흥, 단산을 거쳐 부석사에 이르는 소백로는 은행나무 단풍이 아름다운 길로 이름 높았다. 30년 이상 자란 은행나무가 늘어서 있었다. 10월 말이면 단풍 든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달려 부석사로 들어가 절정에 달한 은행잎들이 덮은 길을 걸으며 방문객들은 산사의 가을을 누렸다. 부석사를 다녀간 이들이 남긴 블로그 포스팅 중에 은행나무 가로수 길에 대한 이야기가 적지 않다.

풍기에서 부석 구간의 소백로는 확장공사가 진행 중이다. 2009년부터 시작된 공사가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아쉽게도 도로확장 공사에서 은행나무 가로수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작년 2월경에 단산에서 부석으로 가면서 은행나무가 베어진 것을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은행나무 가로수 길이 훼손된 것을 아쉬워했다.

베어진 은행나무 가로수들은 이 길을 다녀간 사람들의 기억에 새겨진 추억이고 다시 찾아올 약속 같은 것이었다. 도로 확장공사를 계획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쁜 결과를 의도한 이는 없다. 비단 이 일만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일들이 규정된 절차에 따라 수행되지만 아쉬운 점이 있게 마련이다.

어떤 사안이든 직면한 접점에 몰입되는 경우가 많다. 도로에 관련된 것이 꼭 지역민의 필요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포괄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을 해가며 검토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가을철에 관광객이 몰리고 차들이 서행하는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이 경우 “도로가 복잡하니 넓혀야 한다”는 요구를 하게 된다. 그러면 관계된 사람들이 모여 “도로를 확장하는 것이 타당한가?”를 검토하고 추진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업들이 이런 과정으로 발의되고 검토되어 추진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도로확장” 이외의 것에 관심을 기울이기 어렵다. 더군다나 추가로 예산이 더 들어가는 일이라면 더욱 세심하게 고려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풍기에서 부석을 잇는 소백로는 어떤 길이어야 한다’고 정해 놓은 것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매일 이 길을 다니는 주민들이나 다녀간 관광객에게 물어서 결정했다면 예산이 더 들더라도 가로수를 이식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영주인들이 공감하는 미래 청사진이 있다면 어떨까? 영주의 문화를 어떻게 가꾸어 꽃피울지, 우리 지역에 맞는 산업을 어떻게 육성해 나갈지, 도시를 어떻게 활기차게 할 것인지, 소멸의 위기에 직면한 농·산촌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 우리가 깃들어 사는 환경을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는지, 산림을 통해 탄소중립을 달성해 내는 과정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우리의 삶터를 어떻게 쾌적하게 만들 것인지, 그리하여 우리 영주인이 얼마나 안정되고 문화적이며 격조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인지 등 영주인 미래의 삶을 그린 설계도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달라질까.

영주 설계도가 있다고 당장 무엇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주인이 보다 더 많이 우리 스스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고 그때마다 더 좋은 생각들이 드러날 것이다. 눈이 쌓이듯이 아이디어가 늘어날 것이다. 설계도는 처음에는 다소 어설프고 부족한 곳이 많을지 모르나 시간이 가면서 채워지고 진화해 나갈 것이다.

적어도 어떤 이의 독단으로 근심거리를 만드는 일 같은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영주시민은 진정한 주인으로서 주인의 계획을 제대로 실현시킬 머슴을 뽑아 세우고 그를 독려하고 평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귀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영주가 자신을 빛나게 할 새로운 삶터로 선택받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선거 때마다 후보들은 저마다 이러 저러한 일을 하겠다고 공약을 내 건다. 그러나 정작 영주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영주에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자고 하는 후보는 보지 못했다. 주인인 영주시민이 공감하지 못하는 일이 단지 선거공약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정당성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번 선거에서는 “영주미래위원회”등 명칭을 어떻게 하든 영주의 미래비전 수립이 큰 이슈가 되기를 희망한다. 주인인 시민이 스스로 만든 영주의 미래 설계도와 시방서를 가지고 나서야 누가 시민의 뜻을 정확히 받들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가늠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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