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별 보다 직원들이 곁에 있어 정말로 행복하다”

임권택감독과 함께
임권택감독과 함께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페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용인시 노인복지 개척...장애인 특수학교 설립도 추진
문수 사느래가 고향 ...문수역 옛 추억 방치 아쉬워

30만 출향인 다시 불러들일 ‘추억 마켓팅’도 제안
문수역 앞 구멍가게 5남매 중 셋째

이제는 기차가 서지 않는 문수역, 문수역 앞 광장에는 야트막한 높이의 원형 휴게소가 있었다. 주변에는 측백나무들이 있었다.

아이들이 측백나무에 붙어 매미 소리도 내고 숨바꼭질도 하던 곳이다. 역 앞에는 이발소와 이발소에 딸린 구멍가게가 있었고 또 다른 구멍가게가 있었는데 바로 임형규 관장의 집이었다.

부친이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역임하고 문수중부초등학교 육성회장을 지내는 등 사회 활동을 활발히 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집안이 매우 가난했다고 한다. 임 관장은 5남매 중 셋째다. 이 집에서 5남매가 복작거리며 살았다.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다 한다.

먹거리가 부족했던지라 손님용 라면을 끓이면 물을 더 부었다가 그 국물을 덜어 자녀들에게 밥을 말아주곤 했다. 소아마비 누님이 있었다. 철없을 때 누님을 놀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누님과 가장 가깝다.

아파트 단지 속 용인시기흥노인복지관

용인시기흥노인복지관은 2015년 4월 개관했다. 대지 610평에 지하1층 지상4층 건물로 직원 49명이 8천200명의 어르신 회원들을 위해 90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로 한동안 프로그램 운영이 원활치 못했으나 지난해 10월부터 방역을 철저히 하고 거리 두기를 지키면서 80여 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70~80대 어른들이 엄혹한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가난 밖에 남지 않은 시대에 베트남 파병으로, 서독 광부로, 서독 간호사로, 중동 건설 노동자로 살았던 세대이고 이분들의 노력으로 지금의 선진국 한국이 만들어졌다고 임관장은 본다. 이 분들이 행복한 여생을 살 수 있도록 지금 세대가 노력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어르신들이 복지관에서 여가를 즐기고 교제를 통한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데 그는 중점을 둔다. 편안히 여행 한 번 못해 본 어른들을 위해 바자회를 열어 그 수익금으로 중국 여행도 보내 드렸다. 은혼식, 금혼식, 리마인드 웨딩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그는 세대 간 단절을 안타깝게 여기고 사회문제로 본다. 1-3세대 간의 소통 문제를 해결하고자 어린이집과의 연계 행사를 추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부인과 함께 고향의 산 소백산 등정
부인과 함께 고향의 산 소백산 등정

발로 뛰며 노인복지 해결점 찾아

임 관장은 노인복지관에서 헌신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늘 감사함을 느낀다고 한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어르신을 발견해 생활 지원을 하고 외로움과 고독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정서적 지지를 해 줄 수 있어 행복하다.

외로운 어른들의 생일에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직접 찾아가 생신상을 차려 드리고 선물을 건넨다. 선물을 건네는 게 끝이 아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 속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점을 찾아내곤 한다. 어른들이 웃음꽃을 얼굴에 피우고 노인복지관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용인시 관내 장애인 복지관 건립 공헌

바로 위 누님이 소아마비 장애를 갖고 있다. 어릴 때부터 장애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거기다 자신이 군대에서 장애를 갖게 되었는지라 장애인의 재활시설이나 문화 여가 시설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평소 장애인 복지에 관심을 가졌는데 용인시 관내에 장애인복지관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다 2002년 초여름에 용인시 이정문 시장에게 복지관 건립을 건의했다.

이때 만들어진 복지관이 용인시장애인복지관(현 용인시처인장애인복지관)과 용인시서북부장애인복지관(현 용인시기흥장애인복지관)이다. 그는 서북부장애인복지관 초대 관장으로 부임해 장애인의 직업 재활, 문화 여가 관련 프로그램 정착 등 복지관의 기틀을 잡았다.

문이 잠긴 문수역 앞에서 허탈함을 느끼고
문이 잠긴 문수역 앞에서 허탈함을 느끼고

용인시 관내 장애인특수학교 설립 공헌

장애인복지관에 근무하면서 장애 특성에 맞는 교육을 해야 그들의 삶에 더 도움이 되리라고 보았다. 장애인특수학교가 있다면 장애 아동들이 성장 후 큰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다.

특수학교 건립을 위한 TF팀(장애인부모회, 강남대 특수교육학과 교수, 용인시 장애인복지과 공무원 등)을 구성해 특수학교 건립을 추진했다. 당시 용인시장과 경기도지사로부터 75억원을 확보해 장애인특수학교 ‘용인강남학교’가 2010년 설립인가, 2011년 2월 28일 준공돼 관내의 장애 아동들이 교육을 받고 사회의 일원으로 배출되고 있다.

고령화 문제 해결 방안 ‘1~3세대 소통’ 중시

용인시기흥노인복지관에는 다양한 행사가 있다. 개관 기념 행사로 ‘효 행복드림’을 제목으로 한 프로그램을 열었다. 관내 어린이집과 연계해 어린이와 그들의 부모 그리고 어르신들이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명절 행사로 정착됐다. 우리 사회의 문제로 떠오른 세대 간 단절을 해결하고자 하는 행사이다.

평소 어르신과 접할 기회가 없었던 어린이들이 자애로운 어르신들의 모습에 친밀감을 느끼고 어린이들의 재롱을 보며 어르신들은 자주 보지 못하는 손주들을 보듯 즐거워한다. 지역 주민들도 1-3세대 소통의 장인 이 행사에 대해 지지를 보내며 칭송하고 있다.

연말에 복지관에서 봉사하는 분들과 복지관에 후원하는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행사를 하며 여러 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기회를 만든다. 임 관장은 용인서북부장애인복지관장으로 있을 때 설날과 추석 효도상여금도 만들었다. 상여금의 반은 부모님(때로는 조부모) 통장으로 지급하는 세대 간 소통의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그때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은 “관장님의 가르침으로 부모님께 효도보너스 50%를 보내드리다 보니, 부모님께 적으나마 효도를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임 관장의 평소 생활습관을 닮고 싶다고 한다.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복지관

용인시기흥노인복지관은 별도로 뚝 떨어진 곳이 있지 않고 대단위 아파트 속에 위치한다. 어르신 회원들의 상당수도 주민이다.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행사를 통해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복지관을 지향한다.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행복동행장터를 개장해 지역주민의 참여를 유도했다.

장터에서 생기는 수익금으로 취약계층 어르신들의 생활을 지원하고 여가문화를 지원하고 있다. 이 행사는 노인복지관과 지역주민 간 화합의 장이 되며 어르신에 대한 공경심을 고취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국가유공자 3급이 된 사연

임 관장은 1982년 7월 민정경찰로 비무장지대에서 군 복무 중 지뢰가 터지는 바람에 크게 다쳤다. 지금도 파편이 몸 여러 곳에 박혀 있어 흉터와 함께 통증 유발을 남겼다. 그 통증 때문에 깊은 수면에 잘 들지 못한다. 그가 저녁에 술을 마셔도 부인이 잔소리하지 않는다. 술이 숙면에 도움이 되고 술 때문에 실수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장애를 얻었다.

초기에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비관도 했으나 6개월 만에 극복했다 한다. 군을 제대하고 대학 졸업 후 1988년 두산그룹에 입사했다. 다리가 불편했지만 활동이 많은 업무에 자원했으며 업무 성과가 높았다. 두산그룹에 입사하면서 배치 받은 곳이 용인시로 지금까지 용인시에 거주를 하고 있다. 즐겁게 봉사하는 일을 할 기회를 준 용인시에 감사하다고 한다.

휴가 한 번 안 가고 일에 몰두

임 관장은 일하는 게 즐겁다고 한다. 두산그룹에서의 직장생활을 포함, 지금의 노인복지관장 업무를 하면서까지 휴가 한 번 가지 않았다. 휴가를 가야 한다고 하면 휴가계를 내고 근무하기 일쑤였다. 일하는 게 그만큼 즐겁기 때문이다. 부모님 세대가 어려운 상황에 살아남기 위해 살던 모습을 자신도 모르게 닮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한다. 자신은 휴가를 가지 않았지만 직원들의 휴가는 꼭 챙겼다.

복지 업무를 하면서 직원들의 복지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직원들은 남다른 존재이다. “밤 하늘에 무수한 별이 있어 빛나고, 땅에 무수한 꽃이 있어 아름답다. 나는 꽃과 별 보다 사랑하는 직원들이 곁에 있어 정말로 행복하다”

고향은 언제나 마음속에

고향 영주는 떠나 있어도 늘 그의 마음 속에 있다. 영주재경향우회를 비롯 고향 모임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추억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만나는 게 좋았고 친구와 선후배들과 소통을 하며 자신이 하는 복지 업무를 어떻게 하면 더 좋게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다고 한다. 사느래 마을의 집들은 바뀌어도 눈에 익은 야트막한 산들과 내성천은 힐링의 모티브다.

하지만 임 관장이 옛 추억을 찾아 문수역에 들렸을 때 실망했다고 한다. 문수역 앞의 옛집의 흔적은 없어졌더라도 문수역에서 추억의 흔적을 기대했다. 문수역 안에 옛 기차시간표, 표 사는 곳, 역무원들 옷 등등 옛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물품들이 있기를 기대했지만 문이 잠겨 있었다. 출향인들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건축물과 물건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는 출향인들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임 관장은 “30만 명에 이르는 출향인들이 자녀들과 함께 방문해 자신의 추억 장소에서 자녀들에게 자신의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고 자녀들이 자신의 가족을 데리고 또 찾아올 수 있도록 할 때 지역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인구절벽의 상황에 있는 고향을 더 많은 사람이 방문 하거나 체류할 수 있는 추억 마케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황재천(프리랜서) 기자 / 오공환 기자

임형규 관장 프로필

- 문수중부초등학교, 대영중학교, 영주고등학교
-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졸업
- (현)용인시기흥노인복지관장
- (현)용인시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
- 용인시긴급지원심의위원회 위원
- 사회복지법인 세광재단 이사
- 구성농협 재가노인복지센터 운영위원
- 강남대 글로컬사회공헌센터 자문위원
- 성지고등학교 운영위원
- 스프링카운티 자이 운영위원
- 양지의료재단 감사
- 두산그룹(1988.05~2005.03)
- 용인시기흥장애인복지관장 역임(2005.08~2011.03)
- 연꽃마을 파라밀요양병원 행정부원장 역임(2014.09~2016.03)
- 국가유공자 3급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