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흥기 (소설가·본지논설위원)
‘서구의 소설은 간통문학’이라는 말이 있다. 오래 전, 문학개론을 강의하는 교수에게 들었는데 어감상 듣기 거북하다면 ‘불륜문학’이라고 해도 된다고 우스개처럼 말했다. 교수가 간통과 불륜이라는 말을 하나 싶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니 과장된 말이 아니었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안나는 남편과 아들을 둔 유부녀인데도 오빠네 집을 다녀오는 기차역에서 처음 만난 젊은 장교 브론스키에게 반한다. 마침내 가정을 버리고 브론스키에게 간다. 안나는 이혼을 원하지만 부정한 아내가 이혼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고 남편은 거절한다.
결혼할 수 없어 안나는 브론스키와 브론스키의 어머니와 갈등을 겪는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안나가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지는 비극으로 끝맺는다. 아들이 보고 싶어 떠나온 집을 되찾아가는 안나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정부에 대한 애정이 모정을 끊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간통문학이라면 ‘여자의 일생’도 지나치기는 어렵다. 주인공 잔느는 열두 살부터 열일곱 살까지 수도원에서 지냈다. 집으로 돌아와 한가롭게 살던 잔느는 자작 라마르의 아들 줄리앙과 결혼한다. 잔느는 남편을 사랑하지만 돈과 정욕에 사로잡힌 줄리앙은 하녀 로잘리를 농락하고 백작 플뢰뵐의 아내를 유혹한다. 백작은 아내와 줄리앙의 불륜관계를 알아채고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이동마차 오두막을 벼랑으로 밀어 살해한다.
불륜소설로서는 플로베르의 ‘보봐리부인’을 먼저 얘기해야 온당한 순서일 것 같다. 보봐리부인에게는 정부 로돌프에 이어 레옹도 있었다. 플로베르는 소설 속에서, 어린 딸을 방치하고 남편을 경멸하여 풍속을 어지럽힌 보봐리부인을 비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당해 법정에 선다. 사회의 진실을 그렸을 따름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로 풀려났지만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플로베르는 사실주의(寫實主義) 문학의 문을 연 소설가이다.
미모의 시골 아가씨 엠마는 의사인 보봐리와 결혼하지만 환멸과 무료함을 못 견뎌 괴로워한다. 감미로운 연애와 화려한 도시생활을 꿈꾸는데도 남편은 평범한 시골의사였다. 진부한 결혼생활이 권태롭고 따분하여 바람둥이 로돌프와 밀회를 즐기고 부정을 저지른다. 로돌프와 먼 곳으로 도피하려고 가방을 챙기지만 로돌프는 연애에 열중하는 엠마를 멀리한다. 로돌프가 물러가자 레옹이 보봐리부인의 애인이 된다.
레옹도 로돌프처럼 보봐리부인이 부담스러워 떠난다. 남은 것은 남편 몰래 꾸어 쓴 빚뿐이었다. 로돌프에게 돈을 빌리려고 갔지만 허영과 낭비와 부정을 비난받는다. 빚을 못 갚아 채권자에게 뺨을 맞는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마침내 엠마는 딸을 남겨두고 음독한다. 아내의 불륜을 안 보봐리도 죽는다. 현실에 바탕을 둔 꾸민 얘기지만 불륜의 종착역은 비극적인 죽음인 것 같다.
전북 김제시의 남녀 시의원이 간통을 하여 언론에 보도되었다. 전국적인 뉴스거리였고 동료 의원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두 의원을 제명했다. 가정과 배우자를 둔 성인으로서, 첫사랑에 눈 뜬 사춘기 소년소녀도 아닌데 분별없는 소행을 한 것 같다. 욕정에 굴복하면 사회적인 신분과 책임도, 자식 있는 가정도 눈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의원직을 떠나 시민들에게 속죄하듯 반성하는 나날을 보내는 줄 알았다. 그런데 며칠 전, 그 여성이 이심에서 승소하고 의원신분을 회복하여 김제시의원으로서 회의장에 나타났다는 보도를 보았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간통을 했는데도 당당하게 의회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제명당했던 사람이 의원 노릇을 계속하겠다는 뱃심이 놀랍다.
일심 선고를 받아들일 수 없어 항소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시민에게 무릎을 꿇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승소를 빌미삼아 의원활동을 재개했다는 것인데 속내를 알고 싶다. 불륜을 저질러 시민들을 실망시킨 여성에게 의원 신분을 회복시킨 고법의 판사는 또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 간통죄가 폐기된 사실을 들추고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를 염두에 두어 손을 들어 주었을 것이다.
남녀의 애정문제는 민감한 사적영역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시의회 의원으로서 공인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시정을 이끌 능력은 물론 배우자와 자녀가 있는 가정도 원만하게 이룬다는 전제 하에 그들을 의원으로 선택했을 것이다.
시의원은 실정법을 떠나 의정활동이든 사생활이든 모범을 보여야 할 의무가 있다. 시민을 기만한 거짓말쟁이이거나 위선자일 것 같다. 시의원이라면 뭇 시민들이 늘 관심을 두는데도 간통을 감행한 것을 보아 쉽게 감정에 휘둘린 무모한 사람들인 듯하다.
인간과 삶을 탐구하는 소설의 얘기라면 모르지만 현실에서 의원들이 자행한 간통은 부도덕하고 무책임하여 몹시 허탈하다. 용서받을 방법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스스로 의원직에서 물러나 그릇된 소행을 되새기면서 근신하면 상처 받은 시민들이 실수는 누구나 하는 법이라고 너그럽게 생각해 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