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안 최상호 (시조시인, 본지 논설위원)
우리 고장은 유불선의 자취가 뚜렷하고, 고령화 사회의 조짐이 매우 분명해서 노인 인구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거니와 학연 혈연에 매여서 아직 헛기침하면서 뒷짐 지고 팔자걸음 걷는 노인들의 입심이 아주 센 곳으로 이름 높다.
그러나 그 노인들이 입으로 짓는 구과(口過)가 시민의 현실 인식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좌우한다면 삼가야 하지 않겠는가.
다음은 노인이 입으로 짓기 쉬운 16가지의 잘못을 경계한 내용이다.
조선시대 중기의 문인 학자로 유명한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 선생의 ‘불여묵전사(不如默田社); 노인의 16가지 경계(不如默田社老人十六戒)’란 글을 소개하는 까닭은 ‘선비의 고장, 영주’에서 선비정신실천운동본부를 세우고 여러 방안을 구현하는 현실에 작은 도움이 될까해서다.
첫째는 행언희학(行言戲謔)이다. 실없이 시시덕거리는 우스갯말이다.
둘째는 성색(聲色)이다. 입만 열면 가무나 여색에 대해 말한다.
셋째는 화리(貨利)나 재물의 이익에 관한 얘기다. 무슨 돈을 더 벌겠다고...
넷째는 분체(忿遞)로 걸핏하면 버럭 화를 내는 언사다.
다섯째는 교격(撟激)이다. 남의 말은 안 듣고 과격한 말을 쏟아낸다.
여섯째는 첨녕(諂佞)이니 체모 없이 아첨하는 말이다.
일곱째는 구사(苟私)다. 사사로운 속셈을 두어 구차스레 군다.
여덟째는 긍벌(矜伐)이다. 내가 왕년에 운운하며 남을 꺾으려 드는 태도다.
아홉째는 기극(忌克)으로 저보다 나은 이를 꺼리는 마음이다.
열째는 치과(恥過)다. 남이 내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수치로 알아, 듣고 못 견딘다.
열한째는 택비(澤非)다. 잘못을 인정치 않고 아닌 척 꾸민다.
열둘째는 논인자후(論人訾詬)니 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비방하며 헐뜯는 일이다.
열셋째는 행직경우(倖直傾訏)로 저 혼자 곧은 체하며 남의 허물을 들춘다.
열넷째는 멸인지선(蔑人之善)이다. 남의 좋은 점을 칭찬하지 않고 애써 탈 잡는다.
열다섯째는 양인지건(揚人之愆)이다. 남의 사소한 잘못도 꼭 드러내 떠벌린다.
열여섯째는 시휘세변(時諱世變)이다. 당시에 말하기 꺼리는 얘기나 세상의 변고에 관한 말이다. 이런 노인일수록 입에 말세란 말을 달고 산다.
나이 들어 입으로 짓기 쉬운 허물 16가지를 위와 같이 죽 나열한 뒤 허목은 이렇게 글을 맺었다.
‘삼가지 않는 사람은 작게는 욕을 먹고, 크게는 재앙이 그 몸에 미친다. 마땅히 경계할진저(有不愼者, 小則生詬, 大則災及其身. 宜戒之).’라고.
선비정신을 이어받아 살기 좋은 고장을 만들고자 하는 영주시민이라면, 마땅히 위의 16가지 구과(口過)를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입을 꾹 닫고 말을 아끼면 된다. 어떤 말도 침묵하는 것만은 못하다는 뜻으로 자신의 거처 이름을 ‘불여묵전사(不如默田社)’로 붙인 허목 선생이었다. 한편으로 허목 선생은 자녀들을 위한 깨우침도 남겼으니, 자식을 둔 부모라면 한번 되새겨도 좋겠다.
재물과 이익을 즐거워 말고 교만과 가득 참을 부러워 말라. 괴상하고 허탄한 것 믿지를 말고 남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의심하는 말은 친족을 어지럽히고 투기하는 아낙은 집안을 망친다. 여색 좋아하는 자 제 몸을 망치고 술 마시기 즐기면 생명을 해친다. 말 많음은 반드시 피해야 하고 지나친 노여움은 경계해야 한다.
말은 충직하고 믿음성 있게, 행실은 도탑고도 공정하게, 상례와 제례는 조심스레 행하고 집안 간에는 반드시 화목해야 한다. 사람 가려 벗 사귀면 허물에서 멀어지고, 말을 가려 집중하면 욕볼 일이 다시없다. 군자의 행실은 남을 이기는 것을 능함으로 삼지 않고 스스로를 지킴을 어질게 여긴다. 이를 힘써 잊지 말라. -정지천 <명문가의 장수비결>에서
선비의 고장에서 펼치고 있는 효 실천 3원칙, 충 실천 3원칙, 인사 실천 5원칙, 약속 실천 4원칙, 경 실천 3원칙, 마지막으로 성 실천 3원칙은 안자(晏子) 6훈을 이어받고자 하는 21가지 세부 실천 원칙이다.
세상살이는 모두 법과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지만, 하나하나 따지며 반드시 지켜나가며 살기란 그리 쉽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법과 원칙이 흔들리면 내우외환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을 뼈아프게 실감하는 요즘이 아닌가.
노인이 많아졌다고 해서 젊은이들이 고민하지 않게 하려면 언행에서부터 솔선수범하여야 하겠다. ‘왕년에..’라는 말로 실망시키지 말고 ‘지금 우리가 함께 해야 할 것은...’이라고 젊은이들에게 부탁해야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