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껏 열심히 살다보니 먹구름이 걷히더라”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페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머찐디자인’...건축, 실내 건축, 가구 제조
현장에서 땀 빼고 쉴 때는 디자인 ‘열정’

실패에도 좌절 않고 새 사업 벌이는 건
고향이 길러준 끈기와 추진력 때문

선비들의 평소 생활 신조 중 하나가 삼여(三餘)이다. 세 가지 여유 시간을 말한다.

농경시대에 겨울, 밤, 비올 때이다. 삼여(三餘)는 휴식 시간이지만 그 시간에 공부를 한다는 뜻이다.

‘머찐디자인’ 김남중 대표를 보면 삼여(三餘)가 생각난다.

그 스스로도 현장에서 땀 빼고 쉴 때는 디자인을 한다고 말한다. 선비들의 생활 모습 재현이라 하겠다.

늘 고향 영주와 연결...만남을 통해 삶을 공유

그는 늘 고향과 연결되어 있다. 고향에 자주 들리지는 못해도 고향 소식을 알고 고향 친구들과 소통을 한다. 바쁜 와중에도 친구들을 보고 싶어 이동 중간에 친구가 있는 곳에 들리기도 한다.

현장에 가다가 초등학교 친구인 영주 호수목장의 안일윤씨가 제조하는 ‘영주 요거트’ 전시장에 들러 친구가 만드는 건강식품에 감사와 축하를 했던 것은 그가 고향 사람들과 평소에 연락을 계속 해왔기 때문이다. 늦은 밤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전화도 한다. 자는 시간에 전화했다고 ‘끊어’라는 타박을 하고 놀리기도 한다.

영광고등학교 동창인 민병문씨도 그런 친구 중에 하나이다. 새벽 5시에 찾아가 밤샘 근무를 위로하기도 한다. 민병문씨는 119소방대원으로 30년 이상을 봉직하고 있는 시인으로 시집을 내기도 했다. 친구든 지인이든 만남을 통해 삶을 공유해 나가는 것이야 말로 매우 뜻깊은 인생 항로 중 한 부분이라고 그는 말한다.

추석명절에 공사 마무리(2021년9월)
추석명절에 공사 마무리(2021년9월)

숨쉴 수 있는 건축...삶의 환경에 큰 관심

그가 대표로 있는 ‘머찐디자인’은 건축공사, 실내건축공사, 가구제조업체이다. 시공하는 고객에 대해 전 공정 LED조명 설치와 서비스표(상호) 공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의 건축관은 숨을 쉴 수 있는 건축이다. 자연은 자연답게 숨을 쉬어야 하고 공원은 공원답게 숨을 쉬어야 하고 사람은 사람답게 숨을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친환경을 중시하는 그답게 건축 공부도 친환경건축학을 전공했다. 고객에게 맞춤형 비규격 가구도 만든다. 회사가 위치한 곳은 서울시 금천구이지만 그의 손길은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 한정하지 않고 전국에 닿는다. 인터뷰 하는 날도 서울에서 대전으로, 대전에서 강릉으로, 강릉에서 서울로 현장을 점검하는 날이었다.

김대표는 디지털 세상으로의 변화가 몰고 올 삶의 환경에도 관심이 크다. 그의 회사는 중소기업임에도 도메인 www.meojjin.kr이 활성화돼 있다. 그가 보유한 도메인 등 디지털 자산도 여러 개다.

토요일 일요일이라고 그에게 휴일이 아니다. 일이 있으면 일을 마쳐야지 마음이 편안하다. 일거리가 기다리면 일터로 가지 않더라도 머리는 어떻게 일을 할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라 책상에서라도 작업을 해야 마음이 편안하다. 그래도 평소 자는 시간은 대체로 일정하다.

밤 10~11시면 잠자리에 들고 새벽 4시30분이면 일어난다. 불가피하게 밤 11시를 넘기고 자정을 넘겨 잠자리에 들어도 새벽 5시면 잠이 깬다. 새벽을 이용해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자재를 산출한다. 주로 현장에 있고, 사무실에 있으면 종일 전화만 받다 하루를 보내느라 집중하기 힘들기 때문이란다.

어머니 84세 생신날 동생네에서 머위를 다듬으며
어머니 84세 생신날 동생네에서 머위를 다듬으며

실력을 발휘해야 신뢰 얻어

김 대표는 신뢰는 실력을 발휘해야 얻는다고 믿고 있다. 한 번의 실수로 추락할 수 있고 추락은 순간의 일이지만 그 후유증이 클 수 있어 늘 신뢰를 염두에 둔다. 그에게 회헌 안향 선생의 가르침에 있는 신(信)은 실적으로 쌓아올리고 늘 점검하는 속에 녹아 있다.

가끔 그는 자신이 신뢰를 주는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총질을 해 본다. 학창 시절에 좋아했던 서부 영화의 주제곡 ‘석양의 무법자’ 노래를 들으면서 자신에게 신뢰를 깨는 부분이 있는지 총질하는 것이다.

그는 명절을 온통 일 마무리에 바치기도 한다. 금년 추석 연휴도 일터에서 시공 마감했지만 명절에 쉬지 못하는 신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피스빌딩 공사 땐, 위층 아래층에 소음이 전달될까 걱정하지 않고 공사를 마무리 할 수 있어 명절연휴 공사가 좋다고 한다. 연휴에도 같이 나와 공사 마무리에 참여한 직원들도 그와 마음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라 늘 고맙다고 한다. 그에게 팀원들은 감사의 대상이기도 하다.

재활용품 씻어서 버리기
재활용품 씻어서 버리기

자기관리 철저한 환경주의자

그는 나이가 들면서 건강을 더욱 챙겨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건강이 일을 통한 고객의 신뢰와 관련돼 있고 사회에 부담이 될 수 있어서이다. 끊은 지 20년이 되는 담배 이야기도 이와 같은 판단의 결과였다.

나이가 들면서 정신은 건강해질 수 있지만 육체는 탄력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데 건강을 해치는 원인 제공을 스스로가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혈관 나이가 10년 젊다고 나온다고 자랑한다. 술·담배를 멀리하고 규칙적 생활을 한 덕분이다.

그는 재활용품을 버릴 때에도 세척해 말린 후에 방출한다. 쉬인 일이 아니다. 생활 습관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환경을 살피는 마음은 나라 시책에 호응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탄소제로를 국가 어젠더 중에 하나로 택하고 국제적으로도 약속이 돼 있기 때문이다.

선의가 남에게는 상처 줄 수 있어

김 대표는 사람의 마음은 세심히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1990년도 회사 생산직 여사원 10명을 야간 고등학교에 진학토록 했고 그 중 한 명의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쌀 한 가마니를 집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 학생이 며칠 뒤에 퇴사했다. 그 때 김 대표는 자신의 선의가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알았다고 한다.

그 학생의 성격상 그의 그런 선의가 상처가 됐던 것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뒤 자신의 기준으로 남을 대하기보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보게 된다고 한다.

시인소방관 민병문과 함께
시인소방관 민병문과 함께

고향의 기억. 그리고 꿈

영주는 자주 들리지 못해도 친구들이 있고 친척들이 있고 선후배가 있어 늘 마음속에 있다. 재경 영광고 기수 회장을 하면서 고향과 관련된 일을 벌이기도 했다. 매년 정기적으로 동창 모임을 고향 영주에서 하면 빠지지 않는다. 11월 말에도 친구들을 보고 싶어 영주를 찾을 계획이다.

영주가 모범적인 도시재생사업 지구인지라 옛 모습으로 되살아나 추억을 더욱 생생하게 한다. 친구들과 마음먹고 날 잡아 들리던 태극당, 차가 많지 않던 시절의 분수대는 약속 장소이기도 했다.

어릴 때 새벽 3시에 기차역에 가서 신문을 받아 돌리던 아르바이트, 물건을 파는 외판원 아르바이트를 할 때의 거리 모습과 사람들의 모습도 기억에 생생하다.

어렸을 땐 가족들이 3층 한 건물에 같이 사는 꿈도 꾸었다. 지금은 흩어져 살지만 동생네들과 함께 사는 날을 꿈꾸었다. 그는 6살 때 아버지를 사고로 여의고 그 보상금으로 예전 동산여상 근처에 마련한 집에서 살았다. 당시 그 집에 학교와 거리가 먼 곳 출신의 학생들이 와서 자취를 했다.

나중에 그 집이 저지대인지라 자취생들 내 보내고 목조 건물 기둥을 자키로 들어 올리고 전기배선을 다시 하고 도배도 싹 새롭게 했다. 그 때 어린 나이에 그 작업을 보고 돕는 게 즐거웠다. 그 때의 좋은 추억이 건설업을 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는 “지금 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건 그 때의 기억과도 관련이 있다”면서 “사람들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도파민이 살아 춤춘다는 말을 떠올린다”고 했다. 동생네 집을 방문하면 전문성을 살려 집수리를 하기도 한다. 살던 영주 옛집은 형제들과 수리할 계획을 잡고 있다. 현재 비어 있는 집이지만 그에겐 고향의 터전이고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는 곳이다.

그 만의 친화력...오히려 환영

SNS를 하는 것도 소통을 하고 고향 소식을 접하기 위해서이다. 김 대표는 바쁜 일상을 보낸다. 일인 삼역을 하다 보니 사람 만나는 시간이 극히 제한적이다. 그는 고향 지인을 비롯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세상 냄새를 맡기 위하여 SNS를 활용한다. 고향 소식을 꾸준히 접하는 곳도 SNS이다. 가장 안타까울 때는 영주가 얼마나 아름답고 축복 받은 곳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낙담하는 글을 접할 때이다.

김 대표가 현재 살고 있는 지역은 특정 지역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타지역 출신은 차별 대우를 받을 환경이다. 그는 친화력으로 오히려 출신이 다름을 기회로 활용해 소통하고 융화하면서 환영을 받는다. ‘우리는 하나다.’ 라는. 신념으로 진실하게 다가간 결과다. 그에게 지금까지의 인생 속에 얻은 팁 하나가 있다. ‘확신이 서면 10년 투자 아깝지 않고 희망이 없다 싶으면 빨리 방향 전환하는 것이 삶의 지혜’라는 것이다.

고향 제대로 알고 활용...그 자체가 행복

김 대표는 영주를 이야기 할 때 에너지가 넘친다고 한다. 김 대표의 대화 주제 중 제일 큰 것은 고향 자랑거리다. 그는 코로나 시국의 먹구름이 걷히면 영주 홍보는 물론 지인들을 모시고 영주 투어를 할 계획이다. 금년에도 지인들과 영주 방문 계획을 세웠다가 코로나 상황으로 연기했다.

그 동안 영주가 어떻게 변화했고 어떤 명암이 드리워졌었는지에 대한 관심도 좋은데 현재 영주가 갖고 있는 자랑거리를 제대로 알고 활용만 해도 참 좋겠다고 그는 말한다.

어릴 적부터 고향 풀뿌리 먹고 자라 건강하게 살고 있는 지금, 고향 영주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찾는 그 자체가 행복일 수 있다고 한다. 그에게 철마다 고향에서 올라온 과일과 특산물이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인생 별거 있나요. 자기에게 도취돼 살다보니 힘들었던 먹구름이 걷히더라”라고 했다. 28살에 시작한 사업을 전국을 대상으로 펼치다 실패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사업을 전국을 대상으로 펼쳐나가고 있는 그 다운 말이다. 생명을 준 고향이 길러준 끈기와 추진력이란다.
 

김남중 대표 프로필

- 영주 동부초등학교
- 영주 영광중학교
- 영주 영광고등학교
- 경북전문대학교
-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건축공학과 친환경건축학
- ‘머찐디자인’ 서울시 집수리시공업체 선정 등록(2021)

황재천(프리랜서) 기자 / 오공환 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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