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흥기 (소설가·본지논설위원)
영어단어 ‘이미지(image)’는 ‘사진’, ‘영상(映像)’, ‘꼴’ 등의 뜻이 있다.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물에 대해 마음에 떠오르는 직관적 느낌’이다. 시문학 용어로서는 한 줄 한 줄 시행을 읽을 때 머릿속에 그려지는 구체적인 그림이 이미지이다. 시를 읽으면서 떠오르는 ‘마음의 그림’, ‘마음의 상(象)’이라는 의미로 ‘심상(心象)’이라고도 한다.
시인 김광균은 우리 시(詩)의 역사에서 ‘귀로 듣는 시’에서 ‘눈으로 보는 시’, 본격적인 이미지 시를 탄생시켰다. 그의 시 「추일서정(秋日抒情)」은 가을날의 고독하고 쓸쓸한 정서를 사물과 현상으로써 형상화했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언어로써 그림을 그려 놓은 셈이다. 시의 내용을 화폭에 담는다면 서정어린 가을 풍경화이다. 추일서정은 회화적인 시의 시초이자 전형으로 평가받는다. 감성이 아니라 지성으로 쓴 이미지 시는 결과적으로 시의 영역을 한 차원 넓혔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이하 생략)
근래에는 ‘재(財)테크’처럼 ‘이미지테크’라는 말도 등장했다. 부자가 되려고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이용하여 보다 많은 재화를 소유하듯, 이미지테크는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어 긍정적인 결과를 얻고자 노력한다. 타인의 이미지를 상담하고 관리해 주는 직업이 생긴다는 얘기도 있다.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면 일이 잘 풀리므로 이미지테크의 효용성을 이해할 수 있다. 입사 시험의 면접 같은 경우를 상기하면 이미지테크가 주목받는 까닭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교육부라면 어정쩡하면서도 자기변명은 그럴 듯하게 둘러대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진다. 취약점을 숨기려 하지만 속내까지 훤히 들여다보인다.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는데도 엉뚱한 곳을 집적거리고 어설픈 변명을 되풀이하여 믿음이 덜 간다.
세상이 다 아는 사실도 눈치를 못 챈 듯 우둔하여 좋은 이미지를 그리기에는 애초 그른 일인 것 같다. 제 때에 제대로 못한 잘못을 인정하면 진솔하다는 이미지는 줄 텐데도 때를 놓쳐 이마저 못한다.
공정하게 일을 처리한다지만 사탑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진 자세부터 이상하다. 오른쪽으로 가라는 말이 아니라 곧게 서라는 것인데도 균형 감각을 상실한 듯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똑 바로 서려다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는 실수를 저지를까봐 발을 떼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몇 해 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난이도 조절 실패도 교육부의 이미지를 한층 더 구겨놓는다. 출제에 오류가 사라지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난이도가 문제였다. 하는 일이 미숙하여 이지러진 이미지는 어쩌지 못한다.
얼마 전, 교수들이 자신이 근무하는 대학 부총장의 자녀를 부정입학 시킨 혐의를 받아 기소가 되었다. 지금이 부패한 봉건시대인가. 언론에 보도된 일이라면 일찌감치 알아야 하는데도 교육부는 뒤늦어 파악해 보겠다고 한다.
대학 부정입학을 의심받는 사안이 한둘이 아닌데도 몸을 사리고 입을 다문다.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엄마찬스로써 딸을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시킨 전직 장관의 배우자가 구속되고 입학이 취소되었지만 교육부는 말이 없다.
9월 고3 마지막 모의수능고사 세계지리 문제 유출 사건은 이미 이지러진 교육부의 이미지를 넝마가 되도록 구긴다. 고3 학생이 시험지를 찍은 사진 파일을 평가 당일 소셜네트워크(SNS) 채팅방에 올린 것이다.
시험지를 이상하게 여긴 민원인이 서울 교육당국의 국민신문고에 내용을 제보하면서 유출이 사실로 드러났다. 모의수능고사 문제지 보안은 평가의 생명이나 다름없는데도 학생이 쉽게 문제지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교육부는 뒤늦게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다고 허둥대는 모양새이다.
교육부가 왜 저리 할 일에 둔감한지 답답하다. 일선학교를 어떻게 감시 감독했기에 저 지경이 되었을까 싶다. 문제가 유출되면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은 끝난다.
특성화고교의 자격증 없는 현장실습 학생에게 잠수를 지시하여, 요트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다가 사망한 사건에 장관이 ‘철저히 조사하여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지만 잃어버린 생명은 돌아오지 않는다.
교육이 본질적으로 유연하고 관용적이어서 교육부가 우유부단할까. 학생을 지도하는 일선학교는 너그럽고 관대해야 하지만 정책을 수립하고 각급 학교를 감독하는 교육부는 현장 교육과 다르다.
교육부가 이미지를 변신하기 바란다. 눈치 안보고 대입비리를 척결하기 바란다. 옳은 일은 단호하고 신속하게, 그릇된 사안은 저돌적인 만큼 용감하게 헤쳐 나가는 새롭고 미더운 이미지를 새겨 주기 바란다. ‘교육은 국가 백년의 큰 계획’이라는 말은 분명히 들었을 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