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정체성 ‘선비정신’과 ‘긍정의 힘’이 나를 키웠다

2017년 7월1일. 중앙부처 공직자 모임 영주선비포럼 상임이사 역할 수행
2017년 7월1일. 중앙부처 공직자 모임 영주선비포럼 상임이사 역할 수행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페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주한 타지기스탄 대사관 유스프 대사와 한국어 강의 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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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시청서 첫 공직생활...경북도청 거쳐 행안부까지
9급 지방직 공무원서 중앙부처 부이사관 승진 화제
선비포럼 상임이사 맡아 중앙부처 선후배와 수시 소통

“고향의 발전을 돕기 위한 중앙부처 공직자들의 모임인 ‘선비포럼’의 심부름 역할을 기꺼이 맡았습니다.”

행정안전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노경달 처장의 말이다.

‘선비포럼’은 영주시청 공무원과 중앙부처 공무원이 ‘협업(協業)’으로 고향 영주의 발전을 위해 지혜를 모아 나가는 모임이다.

노 처장은 이 모임의 상임이사이다. 고향 선후배들의 강권(?)으로 맡은 일이다. 고향을 위한 일이기에 힘든 일이라고 회피하지 않았다.

선비포럼의 상임이사는 소통을 많이 해야 한다. 중앙부처 선후배 공무원들과 수시로 소통을 하며 어떻게 하면 고향이 더 발전할 수 있을지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고 한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느낌을 주는 가을 날씨가 되면 선비들은 교직물(交織物) 옷감을 즐겨 입었다.

서로 다른 성분의 실을 날실과 씨실로 하여 만든 교직물은 추위를 막아주고 사람 몸에 친화적이다. 노 처장은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며 성능 좋은 교직물이 만들어지듯 고향 출신의 공무원들도 씨실과 날실처럼 협업을 통해 고향 발전이라는 교직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본다.

노 처장은 선비의 고장인 영주 출신의 공직자들이 선비들의 정신을 이어 이 시대 나라의 발전과 고향의 발전을 위해 큰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선비포럼의 상임이사로 많은 책임감을 느끼며 중앙부처 선후배 공무원들과 수시로 소통을 하며, 하루도 바쁘지 않는 날이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9급으로 시작해 부이사관 승진 화제가 된 인물

그는 1980년 9급 지방직 공무원으로 시작해 2019년 중앙부처의 부이사관으로 승진, 화제의 대상이 됐다. 행정고시를 통하지 않고 부이사관까지 승진한 사례가 그만큼 드물다. 예전에는 9급으로 시작한 사람이 장관으로 발탁돼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먼 과거의 일이다.

지금 시대에 9급 지방직으로 출발해 중앙부처 부이사관으로 승진한 사례는 개천에서 용이 났다는 세간의 평을 듣는다. 지방과의 인사교류가 낮은 행정안전부라 그런 승진이 가능하다는 게 그의 겸손이지만 현실에서는 행정안전부 내에서도 매우 드물다.

그가 일을 맡으면 주목을 받는 성과를 냈기에 가능한 승진이기도 하다. 그의 승진은 9급이나 7급으로 공직을 시작해도 능력을 발휘해 성과를 내는 사람들이 승진을 하는 사례가 많아져야 한다는 여론이 있음을 보여준다.

2021년 스승의날 호원대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의 축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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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시청에서 시작한 공직 생활

노 처장은 공직생활을 고향인 영주에서 시작했다. 영주시청에서 10년 가량 근무했다. 시정의 주요 현안 처리를 위해 밤을 지새울 때도 많았다. 시정의 주요 현안 해결을 위해 밤이 늦도록 야근하며 야근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품앗이 야근으로 서로 돕기도 했다.

밤 12시 넘어 퇴근하며 영주역 앞의 포장마차에서 술 한 잔과 웃음으로 격무를 즐거움으로 바꾸곤 했다. 공무 수행의 어려움을 끈끈한 동료애를 바탕으로 서로 도와 해결하는 것도 영주의 인심이고 선비정신의 발로이다.

맞벌이 공직생활, 아들 딸 키우며 객지 생활 30년

노 처장은 영주동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당시 영풍군청에 다니던 공무원이었다. 1987년 결혼했다. 그의 결혼기념일은 특이하다. 1월 1일이다. 어머니가 잡은 길일이라고 한다. 어머니는 음력으로 결혼 날짜를 잡았겠지만 양력으로는 1월 1일이 결혼식 날이었다.

“어머니가 관사골에서 가장 용하다는 철학관에 들러 길일이라고 잡아 온 그날이 양력으로는 설날이었지요. 그 당시에는 황당했으나, 살아오면서 잊을 수 없는 결혼기념일이 되더군요” 그의 술회이다. 근무하느라 결혼기념일을 챙기지 못하는 부부가 많은데 이들 부부는 결혼기념일이 새해 첫날이고 공휴일이니 잊고 넘긴 적이 한 번도 없고 새해 다짐을 같이 할 수 있었으니 확실한 길일을 받아 결혼을 한 셈이다.

신혼 시절 공고가 난 제1회 경북도청 7급 전입시험에 도전하면서 고향 영주를 떠났는데 30년의 객지 생활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당시 경북도청에는 34개 시군별 향우회가 있었는데 영주출신 선배 공무원은 두 명이었다.

그들을 멘토로 주말부부로 살다가, 국가직 7급 시험을 거쳐 내무부로 옮겼다. 부인이 서울시청으로 전입하면서 주말부부 생활을 끝내고 아들, 딸 가족과 함께 살 수 있었다. 그에게는 매사가 감사의 대상이었고 지금도 그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2019년 2월4일. 영주 북부정미소 집 6남매의 우애
2019년 2월4일. 영주 북부정미소 집 6남매의 우애

정미소 집 5남1녀 중 셋째...새 옷 입어본 적 없던 어린 시절

정미소, 왕겨 날리는 게 일상인 곳이다. 그 당시 잘 사는 집이기도 했지만 지금의 기준으로는 가난의 시절이고 왕겨의 분진이 방안까지 쌓이는 환경이었다. 아이들 심부름 할 거리가 많은 곳이기도 했다. 노 처장은 북부정미소 아들 중에서 가장 심부름 잘하는 셋째 아들로 소문이 났다.

심부름을 잘해 어른들의 칭찬을 받았지만 옷은 늘 첫째 형과 둘째 형이 물려 입던 옷을 마지막에 물려받아 입었다. 자신이 입고 나면 이미 헤어진 옷이 되어 더 물려줄 수도 없었다. 새 옷을 입어 본 기억이 없는 어린 시절이다. 그래도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고향 사랑의 마음이고 같이 놀던 친구들을 만나면 그 때의 시절로 추억여행을 하게 된다.

긍정의 힘으로 지켜온 공직 생활

영주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경북도청을 거쳐 내무부로, 영주에서 대구로, 대구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세종으로, 세종에서 다시 서울로 여러 부서를 거쳤다. 어릴 때 물려받아 입던 옷 보다 더 많은 이동이다. 내무부도 행정안전부, 행정자치부, 안전행정부 등 여러 이름으로 바뀌었다.

나이가 들면서 ‘긍정의 힘을 키우자’라는 마인드로 일을 했다고 한다. 행정자치부 분권1과장, 분권운영과장 등을 맡아서 고향을 생각하며 지방분권 촉진 업무를 하고, 30만 지방공무원 공직 감찰 업무로 성실한 공직자를 보호하는 감사 기능을 수행해 왔다.

1948년 내부부·총무처 출범 이후 70여 년 간의 광화문 시대를 마감하고 세종특별자치시로의 이전을 진두지휘하면서 행정부 전반의 효율성을 높이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최근에는 행안부 이북5도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재직하면서 850만 이북도민 역량강화 조사연구 업무, 남북이음 교육 및 차세대 이북도민 육성 등의 중점사업을 담당했다.

행안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사무처장 취임

최근 40년간의 공직생활에 이어 행안부 소속 공공기관(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임원(사무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류심사-경험면접-전공면접-청와대 인사검증-주무부처 장관 임명제청까지 두달이 걸려서 맡은 중책이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희생자 및 유족 등에 대한 복지지원 사업, 추념사업 및 강제동원 피해와 관련 문화·학술·조사·연구 등의 사업과 피해구제를 위한 국민통합과 평화와 인권신장 등의 사업을 통해 강제동원의 유족과 처절한 피해자들을 위해 본격적인 지원 사업을 펼쳐 나가고 있다.

다문화 속의 삶은 현실이고 미래...제도와 태도에서 수용도 높여야

노 처장은 행정학박사이다. 박사학위는 “공무원의 다문화 수용성 결정요인에 관한 연구”이다. 다문화는 글로벌 시대의 문화이고 우리나라가 국제 무역 확대, 투자 유치 및 해외 투자, 국제결혼, 외국인 근로자 유입 등 현실의 문화이기도 하다. 그는 ‘다문화’에 관심을 가진 것이 매우 자랑스럽고, 앞으로 봉사활동을 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한다. 매주 월요일 저녁 그는 ‘한국어와 한국문화, 한국사회 이해 교육’ 강의도 하고 있다.

“어릴 때, 학교 운동장에서 다방구(술래잡기) 놀이를 하다 해질 무렵이면 친구들과 ‘숙이 누나’에게서 받은 빵을 오후반 교실에 배급하는 봉사활동을 했지요. 배급이 끝나면 식빵(강낭빵) 세 개씩을 받았습니다.” 그의 이런 추억이 다문화 관련 박사학위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이주민들의 국경은 이미 없어졌습니다. 그들을 받아들인 우리의 마음과 제도에만 국경이 남아 있지요. 이제는 그것을 낮추어야 할 때입니다. 글로벌 21세기 시대에 그야말로 다양성과 개방성이 자산이 되고, 융합이 보편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나라 현재를 문화, 인종, 민족적 다양성이 확대되고 다양한 유형의 외국인 주민 2백만 공존하는 다문화 시대를 피할 수 없는 시대, 그러나 아직은 다문화수용성이 부족한 시대라 진단한다.

다문화도 영주발전의 한축...지혜 모아야

이미 정감록을 끈으로 팔도 출신들이 어울려 사는 영주, 영암선의 개통으로 또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 지역을 발전시킨 역사가 있는 영주시, 다문화 수용성은 영주 발전의 큰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노 처장은 강조한다. 공무원들이 앞장서서 사회통합의 지혜를 모아간다면 코로나19 극복의 세계적 모델이 되듯 다문화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부도 다문화가족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예방하고 사회구성원이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업무를 재설계하는 등 대한민국의 대전환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지자체 조례 등에서 정하고 있는 민원서식 일부는 ‘성명 기재란’의 경우, 한글 세 글자 기준으로 제시돼 있는 사례처럼 다문화 수용성이 아직 부족하다.

노 처장은 정감록을 따라 이주해 온 사람들이 영주 발전에 기여하고 철도 영암선의 개통으로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영주에 와서 영주의 번영에 기여했듯 다문화는 영주 발전의 한 축이 될 수 있으며 영주는 그 축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황재천(프리랜서) 기자 / 오공환 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행안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노경달 사무처장의 프로필

- 영주초등학교, 대영중학교, 영광고등학교 졸업
- 사이버한국외국어대 한국어학부 졸업
- 한양대 대학원 지방자치학과 졸업, 지방자치학석사
- 한양대 대학원행정학과 박사과정, 행정학박사
- 영주시청 및 경북도청 근무 만 12년
- 경북도청 근무 중 국가직 7급 합격
- 행안부 운영지원과장, 감사관실 조사담당관, 분권1과장, 노사정위 관리과장
- 행안부 이북5도 사무국장
- (현)행안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사무처장(상임이사)
- (현)선비포럼 상임이사
- (현)호원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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