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안 최상호 (시조시인, 본지 논설위원)

전통적으로 민초들이 삶터로 자리 잡은 곳은 ‘배산임수(背山臨水)’라는 특징을 지녔다.

추로지향으로 손꼽히는 ‘선비의 고장, 영주’는 자그마한 분지 형태를 띠고, 백두대간 줄기 소백산맥을 어디서나 바라볼 수 있고 넉넉한 논밭을 지녀서 사람살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그러니 천년고찰 부석사를 위시한 불교문화가 터를 잡았으며 사람 살리는 산 아래에 십승지도 존재했을 테고 선비 양성기관으로 소수서원이 터 잡은 게 아니었겠는가.

이웃한 안동은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자칭하면서도 ‘선비의 고장’이라는 브랜드를 선점한 영주를 배 아파한다. 예로부터 선비는 올곧은 삶의 방식을 존중하여 따르다보니 눈앞의 이득에 연연하지 않음을 자랑했다.

그러나 작금에 이르러 사람살이는 한 마디로 지역이기주의에 갇혀버렸다. 지역 출신임을 앞세운 선량들과 고위 공직자들은 하나같이 지역발전에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누구라고 밝히지 않아도 알만한 이들은 다 안다.

영주보다 안동에 훨씬 더 많은 국가 예산이 투입되어왔고 국책기관이나 시설이 들어서 있음을 말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영주는 옛 선비의 행적을 좇았고, 안동은 현실적인 선비상을 따랐기 때문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삼천리금수강산에는 곳곳에 물길이 휘돌아가는 곳이 있으며 그중에서 유명한 곳이 안동 하회마을이고, 영주 무섬마을이다. 안동에서는 하회탈 놀이를 바탕으로 해서 실경뮤지컬 공연과 유교문화 체험마을을 일구어 세계적인 명성을 높이고 있다.

영주 무섬마을 역시 외나무다리 축제를 통해 삶과 죽음의 사이를 외나무다리로 잇는 토속행사를 꾸미는가 싶더니 근자에 와서는 얼토당토않은 블루스축제나 흉내내기 뮤지컬 따위로 마을의 성격조차 흐리게 만들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회마을과 무섬마을은 모두 전통적인 유가 집성촌이다.

옛 선비는 소나기에도 뛰지 않았고 곁불은 쬐지도 않았다. 그게 반드시 옳은 일이라는 게 아니다. 그러나 지킬 것은 지키고 고칠 것은 고쳐가며 살아가야 현대의 삶이다. 그동안 무섬마을은 몇 번 블루스축제라는 걸 열었는데 주관한 이는 영주와 깊은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듣기로는 결재권자와의 친분만으로 예산을 받아냈고 그들만의 잔치로 끝났다.

무섬마을에서도 돈 한 푼 떨어지는 게 없고 동네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행사였음에도 주관한 이가 나중에 구성된 영주 관광문화재단의 이사직을 겸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시의회에서도 한껏 별렀다더니 뒷소문은 잠잠하다.

걱정되는 것은 예산의 낭비만이 아니라 ‘선비의 고장, 영주’라는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주는 일이다. 축제가 무엇인가. 왜 삼천리 방방곡곡이 모든 점에서 서로 비슷하면서도 동시다발로 잔치판이 벌어지는지 심각하게 들여다보질 못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저 요란하게 법석 떨며 사람이 모이면 좋은 줄 알기 때문이다. 전통을 지키면서 조용하게 행복하다고 느낄 체험이 많아져야 한다.

무섬마을은 외나무다리와 은모래가 특징이다. 외나무다리는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오고 가지 못하는 길이다. 기다림과 배려가 깃들어야 한다. 영주댐 건설로 인한 환경파괴라며 그토록 반대하던 무리는 왜 은모래 체험을 제안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얼토당토않은 블루스 축제보다는 차라리 은모래를 이용한 모래조각 체험을 기획해봄도 권할 만하다.

최초로 외나무다리 축제를 기획했던 이가 곧 무섬마을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마음 아프게 들었다. 좋은 아이템은 행정당국에 빼앗겨 버렸고, 지역이기주의와 파벌 짓기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뿌리내리지 못하는 환경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게 안타깝다.

무섬마을은 한옥마을이고, 양반 가문의 유교 이념이 깃든 곳이다. 그까짓 돈벌이에 선인의 영혼까지 말아먹는다면 앞날은 어둡다. 가장 무섬마을다운 게 무엇인지 돌아볼 때다.

얼마 전부터 영주는 부끄러운 일에 휘말렸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을 겪으면서 승승장구하던 한 인물이 추락하였으며, 국외연수에서 추태를 부린 기초의원을 공천한 국회의원 스스로가 미국 출장 중에 스트립바를 갔다고 해서 구설에 올랐다.

혈세를 쓰고 간 선비문화 세계화 출장길에 눈살 찌푸리게 했으니 시장, 시의장을 포함한 국회의원까지 시민을 부끄럽게 만들었다는 시민단체들의 외침도 공허하지 않다. 누가 선비이고 어떤 행동이 선비정신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선비는 소나기에도 뛰지 않고 곁불도 쬐지 않는다는 옛적의 행동을 따르라는 게 아니다.

적어도 공직에 머무는 동안만이라도 예의와 염치는 알고 처신하라는 게다. 그들도 인간이니까 때로는 호기심에 몸을 맡길 수도 있고, 일탈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문제로 불거지고 여론의 질타가 있으면 먼저 사과부터 하는 게 순서였다.

경위를 밝히고 선거판에 나섰을 때처럼 무릎이라도 꿇어야 하지 않을까. 걸핏하면 삭발하고 머리띠 두르는 결기 정도는 지녀야 지켜보는 유권자들이 혀를 차면서도 몇 번 고개 정도는 끄덕여주지 않겠는가.

지금 영주는 2022세계풍기인삼엑스포를 준비한다. 힐링의 중심지답게 여러 아이디어가 모일 것이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걸맞는 다채로운 행사는 물론이거니와 선비문화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인문학 행사가 주가 되기를 소망한다.

지난 영주시민신문에 소수서원 입원록을 빌려간 뒤 돌려주지 않고 있던 안동 도산서원에서 그간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환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잘못을 바로잡는 일도 선비정신 구현임에 틀림이 없다. 유림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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