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랑 이유 “외롭고 지칠 때 떠올리면 힘이 생겨요”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페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풍우회 상봉의날 30주년 참가 애향인들-구리시 갈매동
풍우회 상봉의날 30주년 참가 애향인들-구리시 갈매동

고향사랑 온라인 카페 ‘내고향풍기’ 운영자
20여년 간 고향 관련 자료 디지털로 집대성

고향 행사에 먼길 마다않고 내려와 사진 기록
소중한 기억과 우정, 책에 담고 싶은 게 꿈

풍기에 대하여 알고 싶으면 온라인 카페 ‘내고향풍기’에 가면 된다. 풍기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할 때 자주 듣는 말이다.

인터넷 포털 다음 카페 ‘내고향풍기’에는 풍기에 관한 온갖 자료가 있다. 영주시의 향토사를 연구하는 사람도 검색을 많이 한다.

고향사랑 카페를 자료의 보고로 만든 사람이 바로 사진작가 배규택씨이다.

그는 고향 관련 기록을 모아 디지털 자료화하기 위해 관련 컴퓨터 기술을 익히느라 밤을 여러 날 지새우기도 했다고 한다.

또 이 온라인 카페 ‘내고향풍기’는 집단지성의 힘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배 작가만이 아니라 고향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칫 잊혀질 수 있는 기록물을 디지털화해 올렸기 때문이다.

그 만의 고향 사랑 방식...고향 자료 디지털화

고향을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힘이 생긴다는 배규택 사진작가. 배 작가는 고향을 사랑하는 이유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배 작가만이 아니라 고향을 떠나 있는 대부분의 사람에게도 표현의 여부와 표현 방법이 달라도 그 뜻하는 바는 같을 것이다. 그의 말이 애향인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말로 들린 건 배 작가가 20여 년 동안 고향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는 자료를 열정적으로 모았기 때문이다.

고향을 떠나 있는 사람들이 그가 모은 자료를 보면서 고향을 떠올리며 마음의 평안을 얻고 힘을 내고 있다. 그의 고향 자료 수집과 공유는 어떠한 보상도 없는 활동이다. 어느 누구의 부탁으로 한 활동도 아니다. 그가 만든 온라인 카페 ‘내 고향 풍기’는 그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풍기에 관한 자료의 보고이다.

대부분의 자료는 배 작가가 올린 자료이다. 풍기 관련 자료만 있는 게 아니다. 영주시 전체의 자료도 많다. 영상 자료 또한 많다. 그는 이 자료를 배타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축적하기보다 고향 사람들과 고향인 영주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면 누구나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가 만든 온라인 카페에는 그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적 추억을 글과 영상으로 올려놓아 이 지역의 현대사를 살펴보는 사람들이 인터넷 검색을 할 때 연결되고 있다. 수많은 온라인 카페에서 퍼가기도 해 고향 영주를 홍보하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우연히 온라인을 타고 들어와 그 안에 있는 영주의 모습을 보고 반해 팬이 된 사람들도 적지 않다.

풍우회 상봉의날 30주년 참가 애향인들-구리시 갈매동
풍우회 상봉의날 30주년 참가 애향인들-구리시 갈매동

온오프라인서 ‘시보네’라는 필명이 더 유명

‘배규택’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시보네’라는 필명은 안다. 온라인 상에서 그의 이름은 ‘시보네’ 또는 ‘sibone’이다. 고향에 관한 기록을 디지털 자료로 옮기기 시작한 20여 년 동안 그의 새로운 이름은 그의 본명 보다 더 유명해졌다.

그가 ‘시보네’ 또는 ‘sibone’라는 필명으로 올린 자료를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입에서 입으로 전했기 때문이다. 그의 본명을 아는 사람들 중에는 본명이 금방 기억나지 않아도 ‘시보네’라는 필명은 금방 기억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후배들 중엔 ‘배규택’이란 이름은 모르면서 ‘시보네 형’ ‘시보네 오빠’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고향에 대한 기록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시보네’는 유명 이름이다. 향토사학자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가 향토사를 연구하기 위해 자료를 모은 건 아니다.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의 시간들이 잊혀지는 게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시보네’는 라틴아메리카 음악의 대표적인 곡 이름이기도 하고 라틴 아메리카 특정 지역의 이름에도 나온다. 알콜의 이름에도 있다. 배규택 작가가 ‘시보네’란 필명을 쓰게 된 건 호형호제하며 지내던 지인이 1970년대 초 운영하던 빵집과 연관이 있다.

그 빵집에서 음악에 취해 있는 모습의 사람을 보고 외지에서 방문한 여학생이 ‘음악다방 시보네’에서의 모습과 같다고 한데서 따왔다고 한다.

그가 고향의 소식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보면 고향에 대한 시간의 기록 시보(時報)를 남겨 놓고 싶은 사람이란 뜻의 ‘時報네’일 수도 있겠다.

배규택-카메라를 메고 세상을 바라본다
배규택-카메라를 메고 세상을 바라본다

고향 행사의 단골 사진작가

고향 영주에서 풍기인삼축제, 선비축제, 심포지엄, 각종 전시회, 동문회, 지역민 단합대회 등 행사가 있으면 먼 거리를 마다 않고 그가 살고 있는 고양시에서 달려와 그 현장을 사진에 담아왔다.

행사에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고 그 사진에 설명을 붙여 디지털 자료로 온라인에 올리는 사람들도 많으나 시보네 작가가 온라인 카페에 올린 자료는 ‘조회 수’와 ‘퍼가기’에서 압도적이다. 코로나19의 세계적 감염으로 행사가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행사가 있어도 이동이 힘든 시절이어서 그의 모습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이 나이 먹도록 생전 처음 경험하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으로 아직 긴 어둠의 터널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안타깝고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잠시 집을 나갈 때도 얼굴을 가려야 합니다. 그립고 보고픈 마음 울컥 솟고 눈시울이 붉혀지게 하는 고향입니다. 마음 편히 훌쩍 떠나 다녀올 수 없는 고향, 고향의 흙 내음이 코 끝에 아른거리며 가슴을 두근거리게 합니다.”

그가 한숨을 쉬며 하는 말이다. 2년 가까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그가 인생 후반기에 그렸던 삶이 막히고 그리운 사람을 만나 추억을 꺼내보는 행복을 빼앗기니 속상하고 또 속상하단다.

고향 기억의 플랫폼 ‘내고향 풍기’

그가 만든 온라인 카페 ‘내고향 풍기’는 영주의 자료 집적, 소통, 잊혀진 추억 소환 등 고향 기억의 플랫폼이다.

온라인 카페 ‘내고향 풍기’에 많은 사람이 글을 올리고 있다. 흥미롭게도 글을 올리는 사람의 본명은 기억을 못하거나 몰라도 필명(아이디)를 기억하고 그들이 카페에 남긴 글의 내용을 기억한다.

공산, 황진이, 솔바람, 향천, 따뜻한맘, 불청객, 풍강, 짠지아지매, 큐티여사 등등 톡톡 튀는(?) 소리음을 내면서 그의 입에서 온라인 상의 아이디들이 이어져 나온다. 친구를 발견하고 댓글로 안부를 묻고 연락처를 받아 오랫동안 끊어졌던 동창모임에 나갈 수 있었다는 분들도 있다.

그가 만든 온라인 카페는 이미 지난 시간의 자료만 올리는 플랫폼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시로, 수필로, 짧은 소설로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글이 옛 추억의 기록이 아니더라도 고향의 멋과 맛을 물씬 풍기는 생활 글이라서 고향을 떠나 있는 애향인들에겐 고향과의 연결을 찾는 마음을 먹게 한다.

그가 만들고 운영하는 온라인 카페는 고향에 남아 있는 사람이나 고향을 사랑하는 출향인들만 이용하는 플랫폼이 아니다. 영주에 관한 취재를 하는 매스 미디어가 들려서 영주 자료를 보고 참고하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 카페, 불로그 또는 여러 단체의 카페나 블로그 등에서도 퍼가거나 참고하고 다른 곳의 소식을 다시 옮겨 오기도 하는 플랫폼으로 자리잡고 있다.

작품사진-장끼, 까투리, 꺼벙이가 같이 있는 보기드문 모습
작품사진-장끼, 까투리, 꺼벙이가 같이 있는 보기드문 모습

디지털 기록으로 남은 고향 사투리

잊혀져 가는 고향의 사투리가 지금도 디지털 기록으로 남겨지고 있다. 영주 지역의 사투리는 대구를 중심으로 한 사투리와는 또 다르다. 경상도 사투리라고 한 묶음 속에 넣기엔 독특한 언어가 영주에 남아 있다.

한자(漢字)의 우리말 발음을 정확하게 하는 곳이 영주. 안동 지역이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아직 글자의 뜻을 구분하는 성조가 이 지역에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내고향풍기’에는 경북북부 지역의 사투리, 어렸을 때 익숙하게 말하고 듣고 하던 사투리가 지금도 디지털 기록으로 남겨지고 있다.

사투리 관련 수필이 하나 올라오면 거기에 달리는 댓글도 사투리 표현이 많으니 사투리로 소통하는 옛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배작가가 예로 든 사투리의 하나를 소개하면, “사람이 살민서 우에뜬동 얌통머리 없다는 소리는 듣지 말고 살아야 하니데이”이다.

이 말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떻게 하든지 염치가 없다는 평을 듣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란 뜻이다. 이 말은 영주 지역의 옛 문화이기도 하고 이런 문화 속에 산 세대가 후 세대에게 알려 주고 싶은 말이며 영주가 내세우는 ‘선비의 고장’ 정신이기도 하다.

카페에 축적된 이야기를 책으로 내고 싶어

그는 책을 준비하고 있다. 고향에 바라고 싶은 마음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겸양을 한다. 지난 시절과 같은 열정이지만 힘이 없고 경제적으로 고향을 돕기에도 여력이 안 되기 때문이란다.

이와 같이 겸사의 표현을 했지만 그는 고향을 알리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그 동안 온라인 카페에 축적된 선배, 후배,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듬어 책을 출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급변하는 세상에 사라져 가는 소중한 기억과 우정을 그 책에 담고 싶다고 한다. 또 고향의 멋스런 풍경을 감성 깊은 사진에 담아 고향 영주를 자랑하고 싶다고 한다. 사진 찍는 기술이 대단한 그인지라 영주의 아름다움이 그의 손에서 다시 피어날 것도 같다.

그는 구름밭에서 태어나 자랐다. 풍기장날이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이는 곳이라고 하여 ‘구름밭’이란 이름이 붙은 곳이다. 구름밭은 금선계곡을 통해 급히 내려오던 금계천의 물이 완만한 흐름을 보이는 곳으로 안전한 물놀이 장소라 아이들을 중심으로 지역민들의 물놀이 장소였다.

금계천은 북쪽에서 발원했다하여 ‘북천’이라고도 한다. 책을 통해 북천에서의 원시의 모습으로 놀던 추억도 담고 KTX철길 공사로 확 바뀌어 버린 옛 모습도 담아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었으면 한다.

황재천(프리랜서) 기자/오공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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