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시조 시인. 본지 논설위원)

도산서원 유생 이휘봉(李彙鳳)이 소수서원으로부터 빌려 간 『입원록 제1권』이라는 책자가 135년 만에야 돌아왔다고 한다.

이를 두고 195년 만이라고도 하는 매체도 있다. 이는 빌려준 날을 병술년이라고만 밝혀 1886년인지 1826년인지 명확하지 않은 때문으로 생각된다.

『입원록 제1권』은 114쪽으로 엮은 책으로 소수서원이 백운동서원으로 처음 창건된 1543년부터 이후 130년간의 입원 유생 735명의 이름과 자. 출신지. 벼슬을 기록한 장부이다. 신상을 자필로 기록한 책인데 지금으로 말하자면 입학생명부 같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입원록』은 모두 5권으로 한 질(帙)을 이룬 책이다. 그중 제1권이 소수서원에 없음을 발견하고 찾던 중 『임사록』에 기록된 내용에 의해 도산서원으로 반출되었음을 알게 되어 소수서원 운영위의 반환 요청에 의한 결과이다.

말하자면 도서대출 미반환 사건이 135년 만에 혹은 195년 만에 해결을 보았다는 말이다.

세월이 가면 모든 기록물은 가치의 경중(輕重)에 관계 없이 그 자체로 중요하지만, 이 책이 더욱 귀중한 것은 우리나라 최초 사액서원의 개원 초기 개인신상기록물이라는데 있고, 소수서원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증빙 자료로 쓰였다는 데 있다.

이에, 책의 소재를 추적하고 반환을 위해 수고하시어 마침내 책의 완질을 갖추어 놓으신 소수서원 운영위의 노고에 머리를 숙인다.

그런데 이 책이 없다는 걸 확인한 기사. 『임사록』에 의하면 도산서원으로 대여된 기록이 있다는 기사. 소수서원에서 수차 반환을 시도했으나 도산서원에서 거부했다는 기사,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도산서원에서 해당 서적을 한국국학진흥원으로 기탁하여 그곳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기사를 편편이 읽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고 수긍할 수 없는 장면들이 많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도서란 돌려가면서 읽는 것이다. 도서가 흔한 지금도 그러하니 귀하던 시절이야 더 말해 무엇 할까.

더구나 그 내용이 특수성이 있는 인물기록물 같은 책은 제한적이고 희소성이 있으니 빌려보는 방법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빌린다는 것은 돌려준다는 것을 전제한다.

대출을 기록으로 남긴 책에 대해서 그 당시 도산서원은 왜 빌린 책을 스스로 반환하지 않았으며, 소수서원은 왜 돌아오지 않은 책에 대해 진작부터 반환을 재촉하지 않았을까.

시대적 상황이 혼란기였을 거라는 해명을 듣고 보니 소수서원에서는 긴 세월 동안 그 책이 없어졌는지도 몰랐을 수도 있고, 도산서원에서는 남의 책이 와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100여 년을 넘겼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이미 흘러간 긴 세월에 대해서 원인을 서로 따질 게 못 되고 그래 봐야 소용도 없는 일이다.

생각해 볼 점은 최근의 시점이다. 찾던 중요 고서적이 바로 도산서원에 있다는 걸 알게 된 시점, 도산서원은 소수서원의 귀한 책을 빌려서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이다.

도산서원 측의 말대로 당시 시절이 혼란기여서 반환의 기회를 놓쳤다고 가정하더라도 100여 년이 훨씬 지나 혼란기가 아닌 지금, 『임사록』의 기록을 접했으면 해당 도서에 대한 처리가 달라야 했다.

이쪽에 『임사록』이 있다면 그쪽에는 빌린 책의 목록이 있지 않았겠나. 설사 빌린 책의 목록이 없다 하더라도 내용을 보면 출처가 분명한데 한 번 들어 온 책은 나갈 수 없다는 취지의 답변이 있었다는 기사는 좀 의아스러웠다. 선비들이 책을 중시하는 건 이해하지만 주인이 밝혀진 책을 막무가내로 소장하겠다는 욕심을 주인 처지에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나.

『임사록』을 접하고도 도산서원은 왜 이 서적을 빌린 곳으로 곧장 보내지 않고 한국국학진흥원으로 기탁했을까. 분명히 소수서원에서 행방을 몰라 찾기 위해 애쓰던 바로 그 도서임을 쉽게 알 수 있는데 마땅히 있던 곳으로 보내야 할 게 아닌가.

기탁 받아서 관리하고 있었다는 한국국학진흥원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 책이 어디에 있어야 가장 빛나는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귀한 것을 소장하겠다는 생각만 했던 것일까.

어쨌건 무사한 귀환으로 종결된 일이지만 요청을 받고서야 비로소 내놓는 모양새가 너무도 좋지 않다. 품격을 최고로 치는 이웃 서원의 선비 간에 생긴 일이라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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