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안 최상호 (시조시인, 본지 논설위원)
2021년 4월 7일 치러진 서울과 부산시장 재보궐선거 결과 집권여당이 참패했다고 나라가 시끄럽더니만 금세 잠잠해졌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무려 180석이라는 압승을 거둔 여당이 겉으로 사죄와 반성을 거듭했고, 야당과 일부 유권자들은 외면한 이유를 두고 뒷말들이 아직 분분합니다.
드러난 위선과 무능 그리고 내로남불에 대한 심판 혹은 응징이라고 보지만 내년도 대선에 나서려는 여권 인사들의 면면을 살피면 진정성이 약해 보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다가올 폭염만큼 타인들에 대한 무차별적 분노가 뜨겁습니다. 계약직이 천대받고, 기득권의 갑질이 계층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권리를 주장하면 ‘제 밥그릇 지키기’라고 욕하고, 말 한마디만 실수해도 두고두고 돌팔매질을 당합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부동산대책을 내놓았지만 먹히질 않았습니다.
대중의 인기를 밥그릇으로 삼는 연예인들의 일탈행위가 뉴스가 되는가 하면, 스포츠 스타들도 학교폭력 문제로 하루아침에 뭇매를 맞습니다. 완벽하게 고결한 동기에서 행동하지 않는 한 정.재계의 애국애족도 위선으로 취급받고 맙니다.
지난 선거에서도 ‘적당히 나쁜 사람(Moderately Bad Person·MBP)’들이 당선되었습니다. MBP를 처음 이야기한 대학교수는 자본주의 경제에 참여하는 평균적인 부정적 인간형이라고 설파했습니다. MBP는 음주운전은 하지 않지만 급하면 종종 불법 유턴을 하는 사람입니다.
가끔 공금을 개인 용도에 지출하고 내부자거래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하며 길거리의 불법 DVD와 비아그라를 찾습니다. 재벌기업의 불법에 대해서는 비난의 열변을 토하고 불법 음반의 대량 유통과 표절에 대해 분개합니다.
그러면서도 MBP들이 잘못 행동하는 것을 근절하기 위해 모든 곳에 폐쇄회로TV(CCTV)를 설치해 감시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근본적으로는 선량하고 소심한 사람들이어서 규칙 위반에 대한 페널티가 확실해지면 대부분의 MBP는 행동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주변을 가만히 살펴보면 언행일치로 살아가는 이들보다 표리부동한 이들이 더 많고, 올곧은 지도자보다 변화막측한 리더가 더 많은 게 현실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세계 경제 규모 10위권에 들어섰고, 이제 선진국으로 분류됩니다.
지난 선거는 그저 서울과 부산 시장을 선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음 대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그렇지만 드러난 표심을 분석하면 여당이든 야당이든 제대로 역할 수행하지 못하면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란 것만 확인할 뿐입니다.
믿음도 시간 따라 변합니다. 지지율은 늘 바람 같고 급류 같습니다. 한번 믿었으니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계속 믿어주리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잘하면 잘한다고 치켜주지만 못하면 그 순간부터 회초리를 들거나 몽둥이를 드는 게 바로 민심이라는 걸 확인시켰습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정치인과 선수와 스타들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적당히 나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가치판단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렇다면 MBP들의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타인들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도덕적 염결성을 요구해서는 곤란하겠습니다.
최선을 선택하는 게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하고,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하는 게 투표라고 생각하면 최소한의 규칙이라도 엄수하는 이들을 골라야 합니다.
각자의 밥그릇을 존중하며 타협하는 것이 생활화된 이들을 대표로 뽑아야 합니다. 자기 분야가 아닌 일에는 건전한 무관심을 보이되 어떤 경우에도 최소한 사악해지지는 말자는 자기성찰에 노력하는 이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심리학에 4-4-1-1 법칙이란 게 있답니다. 열 명 중에 4인은 아예 관심이 없고, 4인은 싫어하며, 1인은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지만, 마지막 1인이 좋아한다고 하네요.
살아가면서 주위 사람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살지는 못하지만, 나를 좋아해 주는 1인만 있다면 자신을 가져도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대중의 높은 지지를 받지 못하는 듯한 숱한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얼굴 들고 나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동네 한복판에 점집이나 굿하는 곳도 있고, 성당과 교회도 있으며 한적한 숲속에는 절집도 있는 게 삶입니다. 개인의 복락을 추구하는 종교가 있는 반면에 이웃과 사회 나아가 국가와 인류의 복지를 생각하는 종교도 있습니다.
성직자라고 해서 모두가 존경받는 것도 아니듯이 일반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나쁜 것도 아닙니다. 적당히 나쁜 사람들이 판치지 않는 세상 만들기에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