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흥기(소설가·본지논설위원)
‘어느 시대의 군대생활이 가장 힘들었을까’라는 질문은 막연하여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적과 마주한 최전방이 있고 전선에서 먼 후방도 있다.
소총수가 있는가 하면 소위 끗발 좋은 특과병도 있다. 6.25참전용사분들과 정글을 누빈 파월장병분들은 제외하고, 평균적으로 ‘어느 시기의 군생활이 힘들었을까’라는 물음은 말이 될 것 같다.
아무래도 무장간첩 31명이 국군복장을 한 채 청와대 뒤편 자하문 초소까지 잠입한 ‘68년 1.21사태’ 직후의 병영생활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28명이 사살되었지만 2명은 도주했고 김신조는 생포되었다. 북한이 김신조를 모른다고 발뺌하자 ‘나라에 충성하고 몸 바쳐 일했는데 과연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라는 김신조의 말은 오늘날에도 얘기된다.
1.21사태 직후 입대한 사병들은 혹독한 병영생활을 했다. 언제 어디서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서슬퍼런 명령의 병영분위기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초병의 경계는 삼엄하고 병기는 틈만 나면 닦고 조이고 정비한다. 5분 안에 군장을 갖추어 출동하는 5분대기조도 있었다. 복무기간은 3년이 되었다. 엄격한 저녁점호와 내무사열을 비롯한 군기며, 1.21사태 후의 병영생활은 다른 양상으로 변했다.
‘전군의 전투요원화’라는 기치 아래 계급과 보직에 관계없이 모든 장병들은 일 년에 한 번씩 ‘유격훈련’, ‘전투기술훈련’, ‘공수훈련’을 받는다. 장군도 계급 없는 훈련복을 입고 빨간모자를 쓴 조교의 지시를 따라 훈련을 받았다. 극한상황을 견디는 인내심이 필요하고, 체력이 한계에 이르도록 소모되는 고강도의 훈련이다.
20㎏의 배낭을 진 채 소총을 메고 행군을 하고 야영한다. 단독군장을 하고 10㎞를 50분 안에 도착하는 달리기도 있었다. 모형타워에서 뛰어내리는 공수훈련을 받은 병사라면 제대한 후에도 힘들었던 훈련을 못 잊을 것이다. ‘대통령의 목을 따겠다’면서 무장간첩이 서울의 한복판 종로까지 와서 버스에 수류탄을 던졌으므로 전 장병이 전투요원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전투요원화의 훈련 못지않은 어려움이 또 하나 있다. 늘 배가 고픈 것이다. 피교육생 시절, 밥이 뱃속에 들어가자 말자 봄 햇살에 잔설이 스러지듯 이내 허기를 느낀다. 고봉밥을 먹어도 성이 차지 않는 한창 나이인데도 배식은 인색했다.
한 술이라도 더 먹으려면 그릇이 커야 한다. 밥그릇과 국그릇이 누군가의 손으로 다듬어져 종잇장처럼 얇다. 병사들이 장인은 아닐텐데도 뚫어지지 않으면서도 얄팍하게 늘린 그릇을 보면 섬세한 손놀림에 할 말을 잃는다. 오죽 배가 고팠으면 밥그릇이 풀잎처럼 얇아졌을까. 두드리고 때리다가 구멍이라도 나면 선임하사의 호된 질책이 따른다.
그릇이 커졌다고 밥을 많이 줄까. 뛰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사람도 있다. 손에 잡힌 것은 밥주걱이지만 배식 하사관은 칼처럼 밥을 베다시피 한다. 밥을 퍼주는 것이 아니라 날렵하게 베어 날린다.
그릇의 크기를 확대한 병사들의 솜씨도 감탄을 자아내지만 주걱이 칼인 듯 식판의 밥 표면을 살짝 날려 그릇에 담는 배식기술은 비유하여 신기에 가깝다. 그릇에 가득 찬 듯 보이지만 밥이 가라앉으면 반을 조금 넘는 양으로 줄어든다.
하사관의 표정 없는 얼굴도 기억난다. 그도 밥알을 공중으로 날리듯 하여 배식량을 줄이는 자신의 소행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먹고 돌아서면 배고픈 후배들을 생각하면 못된 짓인 것을 알기에 미안한 심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꾸민 모습일 것이다. 겉보기와 달리 반 그릇 정도 분량의 밥을 알기 때문에 무표정한 얼굴을 하는지도 모른다.
근래 병영의 부실한 급식이 보도된다. 정치인들은 높아진 국격이라고 떠들지만 병사의 급식에 관한한 후진국이다. 제 자식이 그런 열악한 급식을 먹어도 국격을 말할까. 국외에서 미소 띤 얼굴로 사진을 찍고 국격을 자랑해도 병사들의 급식이 불량하면 후진사회이다. 병영의 급식이 선진화되어야 제대로 된 국격일 것이다. 주방의 도마까지 와야만 살아 있는 민주주의라는 말이 있다.
오십여 년 전, 쌀가마니와 부식상자를 실은 덮개 씌운 쓰리쿼터 차량이 위병소를 빠져나가던 그 모습이 그려진다. 병사들이 먹어야 할 쌀과 부식이 트럭에 실려 나가는 뒤란에는 부대 고위급의 권력자들이 숨어있을 것이다.
국방예산이 행정부 가운데 가장 많다는데도 급식이 부실하다면 트럭에 실려 나가던 쌀가마니와 생선상자를 들추지 않고서는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다. 반세기가 지나도 비리가 있다는 걸까. 양질의 급식을 배불리 먹은 병사만이 용감하게 싸울 수 있다는 것은 옛 병서에 있는 말이다.
형편없는 급식이 병영의 부정 탓이라면 감정을 솔직하게 밝혀 일종의 이적행위로 보아 엄벌에 처하라고 말하고 싶다.

